2020/05/30 21:27

더 플랫폼 극장전 (신작)


<큐브> 같은 배경에서 <쏘우> 같은 규칙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불쌍한 영혼들의 영화. 그냥 놓고 봤을 때 나쁜 영화인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 잔재미를 보는 맛이 있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으며, 이것저것 곱씹어볼 것들이 산재해있다는 점에서. 아니, 잠깐. 바로 그게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곱씹어볼 것들. 영화라는 게, 일단 기본적으로 이야기가 논리정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에 여러가지 은유를 은은하게 넣어 완성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지. 근데 어째 이 영화는 은유는 커녕 그게 더 시원시원할 거라 생각했던 건지 그냥 직유를 빵빵 때려버린다. 곱씹을 만한 구석이 없다. 그냥 무엇이든지 간에 대놓고 보여주는데 뭘 찾아서 곱씹어. 그냥 다 관객 입 속으로 때려넣어 주는 백종원 같은 영화네, 이거.

존나 특이한 이 감옥의 프로덕션 디자인도 좋고, 규칙도 재미있다. 먹을 것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니 뭔가 순수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감옥의 재배정 규칙. 흡사 불교의 윤회, 또는 카르마를 떠올리게 하는 규칙 역시 재미있다. 이전 판에서 좆같이 굴었으면 아래층에 재배정 되어 남이 먹다 뱉어 놓은 고기 뼈다귀 따위나 빨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선행을 하면 위층으로 올라설 수도 있는 거지. 봉준호의 <설국열차>가 정치, 경제적인 계급 차이를 수평으로 펼쳐두었고 이후 <기생충>이 수직적 이미지로 그것을 전환하지 않았었나. <더 플랫폼>은 후자에 가깝다. 

문제는 <기생충>이 그딴 거 다 생각 안 하고 봐도 그냥 순수하게 재미있었다는 데에 있는 거지. <더 플랫폼>은 여러가지 생각해볼만한 거리들을 던져주지만, 그 자체로 재미있게 느껴지지 만은 않는다. 아, 알겠어. 메시아라는 단어를 여러 번 직접 언급해가면서까지 종교적인 맥락 끌어오려는 것도 알겠고, 주인공의 세 룸메이트를 통해 각각 다른 후회들을 던져주려는 것 역시 이해했다고. 근데 그냥 그 자체의 이야기로써 별 재미가 없잖아, 이러면.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존나 불호. 영화 속의 은유라는 게 말그대로 은은 해야지. 이렇게 노골적이면 존나 거부감만 들더라, 나는.

뱀발 - 마지막에 어린 소녀를 희망의 대상으로 남긴다는 것 역시 영락없는 <설국열차> 리바이벌 같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7/15 03:31 # 삭제 답글

    제 생각에 그 층이 바뀌는 규칙은 카르마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설명해대는데, 이 공간의 시스템에 업보라는 것이 적용된다면, 이 공간에 업보가 적용된다는 말을 했을 것이거든요. 이건 업보라기보단 그냥 운인 것 같아요. 운에 의해 어떤 사람들은 실패하고, 어떤 사람들은 성공하잖아요. 그 과정에서 굴곡이 좀 심하게 있는 사람들도 있는거죠. 그리고 주인공이 굴곡있는 사례에 속하는 겁니다.

    한편으로 저는 이 영화가 [설국열차]와 다르다는 것에 주목해요. 전에도 쓴 것 같습니다만, 저는 [설국열차]를 시스템에 대한 포기로 봤어요. 인간을 획일화되게 만드는 시스템 자체를 파괴하여 인간을 해방한다...라는 극단적인 아나키즘이자, 어떻게 보면 사회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차의 파괴는 시스템에 대한 강렬한 불신이자 비난을 표시하는 부분입니다.

    반면에 [더 플랫폼]은, 시스템이 아닌 시스템 안의 인간들에게 주목해요. 플랫폼에 내리는 음식을 깐깐하게 만들고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요리사를 꾸짖는 부분에서, 플랫폼의 복지상태가 '이론적으로는' 뛰어남을 보여줍니다. 즉, 그들 딴에 이 복지는 완벽한 거에요. 허나 안의 사람들이 문제죠. 상위층의 인간들이 피해의식이나 불안감에 폭식을 하면서 아랫사람들에게 나누어질 음식이 적어져 아랫사람들이 서로를 먹어재끼는 경쟁상황이 되는 것이 연속되니까요. 즉, 시스템에 대한 비난보다는 내부의 인간들에 대한 비난이 큽니다.

    "스포일러"를 발견하면서 시스템에 대한 비난도 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제 생각에 오류일 뿐이지, 시스템의 문제점을 까는 핵심은 아닙니다. 시스템의 문제를 만드는 건 사람간의 불통이지만 "스포일러"가 플랫폼 안에 내려온 것이 불통의 이유를 야기한 것은 아니니까요. 단지, 이 시스템에 오류가 생겼고 관리자가 그걸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그걸 찾아서 관리자에게 보내주는 것이 결말의 내용이죠.

    재밌는 것이, 후반 두 주인공의 행동은 사회적기업이나 자치단체같은 역할을 띄어요. 복지로도 전달되지 않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죠. 근데 이게 참;; 나눈다는 개념 때문인지 공산주의와 공산주의적 폭력이 보이기도 해요 (...) 허나 그렇게 행동을 하다 "스포일러"를 발견하면서, 두 주인공의 역할은 저널리스트로 바뀌게 됩니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시스템을 붕괴하는 것이 아닌, (설국열차) 시스템의 문제의 근원인 '불통'이라는 메세지를 발견하고 알리는 것이 결말인 셈입니다. 수직 수평 구조보단, 그 점에서 설국열차와 이 영화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주인공 일행들이 했던 자치단체같은 행위는 일시적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이 메세지의 전달은, 플랫폼의 구조를 대폭 수정할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커요. *스포일러*의 본체를 생각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에 노출하면 가장 자극적(?)이고 효과적인 대상이잖아요. 가장 무력하고 순진하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존재니까요. 단지 불통과 단절에 의해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죠.
  • CINEKOON 2020/07/17 16:37 #

    앗, 긴 댓글 감사드리지만 일단 로그온티어 님 다시 돌아오신 건가요?!
  • 로그온티어 2020/07/19 22:16 # 삭제

    아뇨... 이미 데일 대로 데여서 죽어도 이글루스로 돌아오진 않을 겁니다.
    의미있었던 블로거 분들 블로그나 가끔 방문하고 있습니다.
  • CINEKOON 2020/08/08 02:34 #

    안타까우면서도 감사하네요. 가끔 덧글 남기시는 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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