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07 18:40

침입자 극장전 (신작)


그거 하나만은 꼭 말해야겠다. 영화가 진짜 촌스럽다. 내용적인 측면은 그렇다치더라도, 영화의 연출은 물론 촬영과 편집 모두에서 어색한 순간들이 돌출된다. 그러니까 연출은 때때로 구리고, 기술적인 측면은 내내 걸리적 거린다. 근데... 존나 특이하게도 이상한 매력이 있어. 이 정도면 매력있는 괴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지도.


!스포일러 침입선!


초반부의 인상은, 미주알고주알 스릴러라는 점. 이번 작품으로 데뷔한 감독이고, 이전에는 두 편의 장편소설을 써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영화가 설명에 꽤나 집착하는 인상이다. 영화는 명백한 시각 매체이니, 잘 짜여진 미장센이나 일반적인 연출로도 내용적인 측면을 설명 가능하다. 아니면 구구절절 설명적인 대사들을 최소한으로 줄이기라도 해보든가. 허나 영화는 초반부 내내 기초 설정들을 관객들에게 설명하기 바쁘다. 근데 그게 내레이션으로 써도 구렸을 판국에 극중 인물들의 입을 직접 빌어 하고들 있으니...

그럼에도 간혹 괜찮은 연출들이 있다. 그래봤자 눈에 띄는 몇가지지만, 대표적인 게 송지효의 '유진'을 등장시키는 방법 같은 것들.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영화는 두 번의 뒷모습으로 느낌표를 찍어 담아낸다. 카페에서 벌어지는 유진과 '서진'의 첫만남에서 카메라는 유진의 뒷통수에서 시작해 유진 스스로가 뒤를 돌아보는 것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번째 느낌표. 유진이 서진의 딸을 유치원에서 데려올 때. 역시 유진의 뒷통수에서 시작하던 카메라는, 이번에는 카메라 스스로가 유진을 빙 도는 것으로 그녀의 얼굴로 향하게 된다. 이렇듯 인물을 등장시키고 거기에 느낌표를 찍어내는 방식 같은 것들이 나쁘지 않게 느껴진다.

그래도 촌스러운 건 촌스러운 거임. 특정 앵글들을 염두에 두고 그를 구현하기 위해 설계된 집 세트의 공간 구조라든가 아침드라마 마냥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 읽으며 아들에게 훈계하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아버지 캐릭터의 모습 같은 것들은 정말이지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음. 특히 그 아버지는 무슨 소머즈냐? 신문에 집중하고 있는 판국에 분명 아들이 등 뒤로 들어왔거든? 근데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채 아들에게 그냥 말을 던진다. 굳이 따지고 보면 아주 말이 안 되는 장면인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이런 부분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편집이 덜 되었기 때문일 것임. 일반적으로라면 뒤를 돌아 아들을 보는 아버지의 얼굴 커버리지 같은 것들은 하나 정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근데 그게 없으니 어색하고 이상하게만 느껴지는 거.

여러 영화들이 떠오른다. 일단 유진이 집으로 들어와 살면서 자신의 지인들을 불러들이는 등의 묘사는 영락없이 <기생충>의 그것이다. 물론 각본을 쓴 시기가 꽤 길었을 테니 따라 했다고만은 할 수 없는 거고. 이외에도 아리 애스터 영화들 역시 많이 떠오름. 영화의 초반부, 비어있는 유진의 방에 놓인 미니어처 인형의 집은 <유전>의 오프닝을 의식한 듯하며, 유진이 다른 가족들을 조종하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이나 가스 등은 <미드소마>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보기 전에 전혀 몰랐던 요소지만 후반부 사이비 종교 관련된 언급이 많은 영화이니 어찌보면 직접적으로 인용한 텍스트들일지도 모르겠네. 조종 당하는 인간들이 시도때도 없이 코피 흘리는 건 <겟 아웃> 생각남.

하여튼 기술적으로는 영화가 참 괴이한데, 그 뚝심 하나만큼은 인정해야할 판국이다. 물론 사이비 종교로 반전을 후려친 점은 개연성이 좀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냥 만능 치트키 같은 거지. 구체적 복선 따위 집어치우고 그냥 이걸로 다 때우겠다는 심산처럼 느껴져 좀 짜증나기도 하고. 그러나 적어도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유진이 서진의 집으로 들어오는 것도 돈을 요구하거나 또는 어떤 다른 요구거리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거니 했었거든. 그러니까, 사이비 종교 반전은 부담스럽되 놀랍다. 그러니까 구리면서도 이상하게 좋기도 하다는 거.

배우들에 대해선 송지효 이야기를 꼭 해야할 것 같다. 송지효의 활용방식이 정말 좋은 영화. 이런 역할을 많이 했던 배우는 아닌데, 배우 특유의 어둡고 공격적인 분위기가 꽤 잘 쓰여진 느낌. 연기 못하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까지 또 잘한다-라는 느낌은 덜한 배우였는데 이 영화 보고 생각 살짝 바뀜.

이것저것 다 넣고 섞은 잡탕찌개인 건 맞는데, 특유의 그 알싸함만은 인정해야할 수준. 아, 그리고 이건 개그성 꼬투리이긴 한데 주인공 엄마의 태도가 좀 웃김. 잃어버린 딸 찾고는 하느님이 찾아주신 거라며 엉엉 울더니 딸 찾고 나서는 그 때부터 성당 안 나감. 이런 게 바로 먹튀인 건가.

뱀발 - 앗쌀하게 섹슈얼 스릴러로 갔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