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1 21:18

에어로너츠 극장전 (신작)


모험물이 가장 재밌는 순간은 언제일까. 저마다의 다 다른 답이 존재하겠지만, 내게는 그것이 '본격적인 모험이 시작될 때' 또는 '그 모험이 절정에 올랐을 때'의 순간인 것 같다. 아니면 둘 다이거나. 뭐, 절정의 순간이야 꼭 모험물 아니더라도 대개의 영화들이 다 클라이막스 그 순간에 몰빵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모험이 시작되는 순간의 설레임은 정말 잘 연출해야하는 부분이지. 그 부분은 정말이지 잘 쌓아가야 하는 부분이거든. 그 전에 이 모험에 대한 설명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하고, '뭔가가 시작되는 느낌'을 켜켜이 잘 쌓아가야 비로소 진짜 모험이 시작될 때 확 재미있어지는 거. 최근 <트랜스포머> 1편 잠깐 곱씹으면서도 그 이야기 했었다. '뭔가가 시작되는 느낌'을 잘 쌓아놓는 게 중요하다고. 그 점에서 이 영화는 모험물로써 빵점임.

각각 과학자와 열기구 조종사인 두 남녀가 열기구 타고 신기록 세우는 이야기인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영화 시작하자마자 모험 출발이다. 영화 시작하고 10분도 채 안 되어 열기구가 떠버린다. 그냥 그렇게 모험이 시작되어 버리는 거다. 원래 여행도 그 자체의 재미보다 떠나기 전 집에서 계획 세울 때가 더 재밌는 것 아닌가? 근데 이 영화는 그걸 싹 다 생략 해버린다. 진짜 그냥 그렇게 열기구가 떠버린다고!

그러다보니 두 주인공에 대한 관심과 호감도 별로 안 생긴 상태에서 팔짱 낀채 영화를 보게 된다. 아, 물론 주인공 둘을 대략적으로나마 소개하긴 하지. 여자에겐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지 간략하게 제시되고, 남자의 성격은 어떠한지 역시 간소하게 보여진다. 그치만 그건 그냥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일 뿐, 딱 그렇게 제시되어버린 두 인물에게 매력과 호감을 느끼기가 꽤 힘들었다. 누군지도 잘 모르는 둘이 열기구 타고 무작정 떠나는데 내 알게 뭐람. 

문제는 이 영화가 두 인물의 전사와 이 모험의 전사 그 자체를 아예 포기하진 못했다는 데에 있다. 두 주인공은 어떤 성격이고 어떤 트라우마를 가졌는지, 그래서 어떤 과정으로 이 모험에 참여하게 된 건지가 설명되긴 한다. 문제는 그게 죄다 플래시백으로 교차편집 되어 있다는 것! 그러다보니 영화가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느껴지고, 좀 몰입할 만한 부분에서는 여지없이 과거로 돌아가 흐름을 깬다. 근데 시발 그 플래시백들이 존나 재밌는 것도 아냐. 진짜 다 뻔하다.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닳고 닳도록 봐왔던 캐릭터 묘사들이 판을 치는데 시발 그거 보여주겠다고 영화의 리듬을 박살냈네. 남편을 잃고 두문불출하던 여자, 학계에서 따돌림 당하던 괴짜 과학자. 이게 새롭냐? 그 어느 장면 하나 예상 안 되는 장면이 없던데.

그럼 모험 그 자체에 있어서 새로운 비주얼을 보여주느냐? 그것도 잘 모르겠다. <그래비티> 같은 영화들은 '감상'에서 그치지 않고 '체험'된다. 이 영화도 그랬어야 했다. 그러나 그게 잘 되었는지 역시 의문. 배우들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시각효과 그 자체가 아주 새롭거나 압도적인 느낌은 없다. 가끔은 그린 스크린 느낌이 많이 나기도 하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나비 떼나 폭풍우 한 가운데에서 이리저리 표류하는 열기구의 이미지는 이미 다른 영화들에서 다 봤던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고소공포증 살짝 있는데, 이 영화 보면서는 단 한 번도 발현 안 됨.

하여튼 이렇게 떨림 없고 설레임 없는 모험 영화는 정말이지 오랜만에 본 것 같다. 극장에서 보는내내 언제 끝나나 싶었던 영화. 펠리시티 존스만 존나게 예쁨.

뱀발1 - 후반부에 그 좁은 열기구 안에서 둘이 싸움 비스무리하는 거 살짝 무섭던데, 아예 호러로 갔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물론 실화 소재라 한계가 있었겠지만. 애초 실화를 가져온 것 자체가 그 쪽엔 관심없었단 이야기지

뱀발2 - 아무리 낙하산 입혔대도 강아지를 그 높이에서 던지는 건 동물학대 아님? 1860년대에 동물 복지가 어디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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