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17 14:08

클라우드 아틀라스, 2012 대여점 (구작)


여섯개의 시간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엮여가는 이야기. 다시 말해 각기다른 여섯개의 시점들이 교차편집을 통해 보여진다는 건데, 그러다보니 줄거리를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사실 자신도 없는 것 같고 그냥 딱 작품만 놓고 본다면, 굉장한 호불호 평가로 반쯤 실패한 망작 치부받는 영화인 게 사실이다. 근데 난 이상하게도 이 영화가 마음에 들더라고. 맞다. 나는 '호'다.

크게 두 가지 이론이 있는데 한 배우가 맡아 연기하는 여섯개의 캐릭터들이 윤회로 엮인다는 게 첫번째요, 각 시간대마다 존재하는 별똥별 점의 소유자들이 윤회로 엮인다는 게 두번째다. 근데 사실상 두번째 이론은 거의 사장된 거나 다름없지. 이미 여러가지 설정내 오류 같은 것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근데 그걸 떠나서라도 첫번째 이론이 적절한 것 같다. 애초 분장 쇼로 정해진 배우 로스터 안에서 영화를 꾸렸다는 컨셉 자체가 그래야 먹히는 것일 테니까. 별똥별 점은, 그냥 각 시간대마다 존재하는 일종의 '등불' 같은 캐릭터들에게 주어지는 표식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별똥별 점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은 각 시간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하거나, 주역이 아니더라도 진짜 주역을 위해 여러가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딱 그 정도의 의미부여가 적당할 듯 싶음.

다 떠나서 각기 다른 여섯 시간대를 묶는 교차편집의 힘이 흥미로운 영화다. 그야말로 매치 컷 편집을 잘한 영화. 기시감과 기청감으로 각기 다른 씬들을 엮고 묶는 센스와 아이디어가 대단하고, 보는 입장에서는 다소 더 몰입이 잘 되는 경향이 있다. 그 자체로 재밌기도 하다는 것. 다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바로 그 때문에 영화 전체가 좀 산만하고 덜컹이는 인상인 것 역시 사실이다.

말 나온 김에 사소한 부분이지만, 몇 가지 설명 부족의 순간도 눈에 띈다. 대체 손미는 왜 장혜주에 의해 메시아로 간택 당한 건데? 장혜주를 만나기 전의 손미는 그저 수동적인 삶의 자세로 일관되게 살아온 인물 아니었던가. 게다가 클론이잖아. 혁명군 입장에서 과거 예수가 마굿간에서 탄생했듯 새로운 메시아도 가장 낮은 곳에서 점지하려고 그랬던 것일까. 근데 그게 왜 하필 손미냐고. 그냥 장혜주랑 마주쳐서? 시팔 이게 대체 무슨 종류의 재림 예수인지 짐작도 잘 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 명의 인간이 살아생전 남겼던 기록 또는 예술로 인해 후대 누군가의 삶이 송두리째 바뀔 정도로 영향을 받는단 설정이 맘에 든다. 1849년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선박에서 썼던 어윙의 항해 일기는 바로 다음 시점인 1936년의 로버트 프로비셔에게 영향을 주고, 프로비셔는 그 항해 일기에서 받은 영감을 토대로 '클라우드 아틀라스' 6중주를 작곡한다. 이 6중주는 1974년의 바로 다음 시점 루이사 레이 귀에 들어가게 되고, 결국 그녀는 석유 회사의 음모를 밝혀내는 기사를 쓴다. 그 기사는 다음 시점인 2012년의 캐번디시 손에 들어가게 되고, 이어 캐번디시가 벌인 소동극은 영화화가 되어 2144년 시점의 손미에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 손미가 전세계를 향해 쏘아올린 혁명의 불꽃은 2321년 자크리에게 전해지게 되지. 이 같은 연결점들 덕분에 기록과 예술 그 자체에 대한 환희를 맛 보게도 하고, 꼭 윤회 사상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이 시공간을 초월해 연결될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썩 맘에 드는 설정이다.

영화가 일정부분 산만하고 정신없는 것도 인정한다. '통제와 억압에 대항해 싸우는 자유 투사들의 몸짓'이라는 거창한 주제를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영화가 속 빈 강정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규모로 제작한 영화치고는 분명 실패작인 게 맞지. 제작비가 1억 2천만 달러가 넘던데.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불협화음에서 생겨나는 마찰까지도 에너지로 발산하는 아름다운 실패작이라고 생각한다. 과할 때가 있지만, 그 과함이 좋은 영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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