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0 00:29

나의 희망 일기라기엔 너무 낙서


정체모를 외계존재들에 의해 인류는 절멸의 위기를 맞는다. 그나마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우수한 청력을 지닌 외계존재들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숨을 죽인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라도 났다가는 어디선가 외계존재가 튀어나와 나를 낚아챌 터이니.

이런 배경 설정이 존재하는 영화인데, 내가 이야기 나눠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꼭 걸고 넘어지는 게 바로 주인공 부부의 임신 설정이었다. 인류가 망해가는 판국에 섹스가 웬말이냐- 라고 일갈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주인공 뱃속의 아기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태어나자마자 울텐데, 자라면서도 매일 울고 떼쓰고 소리 지를텐데 어떻게 키우냐는 것. 조그마한 소리라도 나면 죽는 상황에서 아기 키울 생각을 하다니 무책임 하다는 것.

백 번 양보해도 사실 현실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항상 생각해왔다. 희망은 일순간 장렬히 산화하고 곧 사라져버리는 저 하늘의 불꽃놀이 같은 것이 아니라, 조그마하고 보잘 것 없지만 마음 한 켠에 깊이 남는 성냥불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희망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나는 언제나 그렇게 믿어왔다.

때문에 주인공 부부가 아이를 갖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생존에 있어 최악의 결정이나, 우리가 꼭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Survival'이 아니라 'Live'가 중요한 것 아닌가. 그리고 아이 없이 생존하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늙어죽든 외계존재들에게 잡아먹히든, 내가 죽으면 그 때야말로 인류는 끝나는 게 아닌가.

희망을 키우고, 희망을 살아남기고, 또 그 희망을 움켜쥐는 것. 나는 그게 언제나 아이들을 키움으로써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그 설정은 불리하지만 결국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아이들을 살아남기는 <설국열차>와 <더 플랫폼>의 결말을 믿는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도, 자신의 자녀를 생각한다면 절대적으로 그 신념을 버릴 수 밖에.


덧글

  • dd 2020/06/24 23:17 # 삭제 답글

    포스팅이 중간에 끊긴 것 같아요. 이어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 CINEKOON 2020/06/30 15:54 #

    사실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크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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