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9 23:59

사라진 시간 극장전 (신작)


난해한 영화란 평이 주를 이루던데, 그냥 생각없이 봐서 그런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무탈하게 봤다. 근데 아무리 영화를 처음 찍는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 해도 그렇지, 첫 인상이 이렇게 개판이면 어쩌쟈는 거냐. 

배우로 유명한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 되시겠다. 출신이 배우든 작가든, 자기 영화를 처음 찍는 신인 감독들은 대개 서툴기 마련이다. 당연한 거지,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는 거니까. 그러니까 이 영화도 많이 거칠 수 있고, 여러 면에서 부족할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꼭 해냈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출신도 아니고 감독이 배우 출신인데다 그 경력마저 30년이 넘어가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자기가 연출한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 톤이나 대사는 좀 잡아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론 중반부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조진웅을 위시해 다른 배우들의 연기에는 큰 불만이 없다. 근데 어떻게 영화 시작하자마자 등장하는 두 배우의 연기가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배수빈과 차수연, 이 둘이 끌고가는 영화의 초반부가 참으로 복장 터질 노릇이었다. 시팔 이 두 배우만의 잘못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 어이가 털리는 거지.

극중 시골의 작은 분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의 배수빈. 첫 등장한 시퀀스에서 이런 대사가 있다. 퇴근 중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하는 혼잣말, "참 좋다". 여기서 일단 실소 한 방. 그리고 이어지는 아내 역할의 차수연 대사, "마음씨가 참 고와". 여기서 비웃음 두 방. 다른 것도 아니고 배우 출신 감독인데 직접 이런 대사를 썼다니 정말 복장과 함께 분통도 같이 터져버림. 이후 조진웅의 인터뷰에서 봤다. 정진영이 쓴 시나리오가 참 순수해서 좋았다고. 그래서 토씨 하나 바꾸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캐스팅에 임했다고. 거기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럼 이 모든 게 다 조진웅의 잘못인 건가? 그게 순수함으로 느껴졌다면 할 말 없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감상은 순수함보단 촌스러움에 더 가깝던데.

판타지스러운 난해함을 제하더라도, 개연성과 현실성이 없어뵈는 건 저 대사들 뿐만이 아니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아내를 둔 남성인데, 그 아내가 무당 마냥 매일 밤마다 접신해 다른 사람이 된다. 그래도 아직까진 나에게나 남에게나 피해 준 적 없고. 근데 그게 시골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진다. 그리고 내 아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그래, 뭐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 근데 시발, 그 마을 사람들이 제안하는 게 다락방에 쇠창살 달기? 그래서 밤에만 아내 가둬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풀어주기? 시팔... 진짜 백 번 양보해서 그것까지도 이해해줄게. 근데 내 뚜껑이 날아간 부분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그 잠긴 다락방의 열쇠를 남편에게 주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관리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팔 펑이다.

그러나 그 외 부분들에 있어서는 평이하되 안정적인 영화다. 무엇보다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가는 슬픔과 두려움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지금의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는 막연함마저 잘 느껴진다. 그리고 좀 난해하게 해석되고 있는 것 같은데,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냥 이 모든 것들이 죄다 일장춘몽이었다-로 읽어도 상관없을 듯. 개인적으로는 조진웅의 인물과 이선빈의 인물이 초반부의 그 부부에게 접신한 느낌으로 읽혔다. 근데 뭐 어떻게 해석해도 상관없지 않나. 이미 이렇게 꼬아놨으니. 하다하다 평행우주로 읽어도 상관없을 것 같던데.

결국은 순응할 수 밖에 없는 운명에 공감으로 대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경제적인 것이든, 계급적인 것이든, 아니면 하다못해 의학적인 것이든. 피할 수 없는 불치병 같은 운명에 끝까지 저항하지 않고 이내 순응해버리는 사람들. 그 와중에 서로를 유일하게 위로해주는 건 겪어본 자들끼리만 던질 수 있는 공감 뿐. 

뱀발 - 후반부 카페 테라스 장면에서 펜스에 붐마이크랑 스텝들 반사되어서 다 보이던데. 이런 것까지 신인 감독의 non눈썰미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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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적이든 간에 죄다 찌질 해보이거나 안쓰러워보이는 것이다. 캐스팅은 존나 잘했다고 본다. 영화 자체는 좀 난해한 편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사라진 시간>처럼 내용 자체가 난해한 건 아닌데, 다 보고 나면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한 영화였는가-에 대해서 좀 난해한 느낌. 개인적으로는 제목을 '파시즘의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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