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8 00:00

로보캅, 2014 대여점 (구작)


폴 버호벤의 원작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견지하면서도 과격한 폭력 묘사로 쾌감 아닌 쾌감을 전달했던 영화였다면, 호세 파딜라의 리메이크는 멜로 드라마적 요소가 더 강조된 영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아예 안 한 건 아님. 오히려 기업주의, 극우주의적인 요소까지 같이 넣고 더 깠으면 더 깠지. 근데 확실히 액션은 좀 모자란 편.

새롭게 리뉴얼 되어 더더욱 AT-ST 같은 모양새가 된 ED 209 등, 여러 전투 기계들이 이미 상용화된 시대. 존나 웃기는 건, 그 기계들을 미국 내에서는 못 쓰고 해외에서만 군사용으로 줄창 쓰고 있다는 것. 세계 경찰 노릇을 자청하는 미국의 모습도 보여주지만, 또 한 편으로는 자칭 '효율적인 도구'라 부르는 그 기계들을 자국민들 대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단 점에서는 내로남불의 기상마저 느껴진다. 근데 그마저도 선 넘어서 국내 배치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 악덕 기업인들의 마인드가 포인트.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니까.

원작에 비해 주인공의 인간적인 면모가 좀 더 강조된다. 아내와 어린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과의 관계, 생사를 함께 했던 파트너와의 의리와 우정, 그리고 자신을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부패한 경찰 동료들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 등. 폴 버호벤이 알렉스 머피의 인간사를 최소화했던 것과는 다르게, 호세 파딜라는 순도 100% 인간일 때의 알렉스 머피에 좀 더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액션 장면이나 클라이막스 보다도 더 기억에 남게되는 장면이 알렉스 머피의 현실 자각 씬이었다. 죽은 줄 알았던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다는 자각.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만난 사람들 앞에서 눈 떴을 때의 당혹감. 두꺼운 강철 수트인 줄 알았던 것이 결국 내 몸이었다는 데에서 오는 비현실감과, 이어지는 신체 분리 쇼의 충격. 그 묘사들을 호세 파딜라는 한 씬 내에서 켜켜이 쌓아간다. 끝내 몸의 모든 부분이 분리되고 간신히 남은 신체 기관들만을 목도하게 되는 알렉스. 근데 진짜 무서운 게, 관객들은 그 전 장면에서 사고 이후의 알렉스 머피 모습을 잠깐이나마 봤었거든. 그 땐 분명 화상 입었을지언정, 비교적 온전한 몸으로 병상 위에 누워있었거든. 허나 지금 남은 건 머리와 폐, 그리고 한 쪽 손 뿐. 제아무리 '기능'이 중요했다 한들, 그들은 효율적인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 대체 얼마만큼의 신체를 잘라낸 것일까. 어쩌면 멀쩡히 기능했을지도 모르는 신체 기관들조차 효율성을 위해 더 잘라냈을 것만 같은 느낌. 때문에 그 씬에서 알렉스 머피가 내지르는 비명과 신음이 더 절절했다.

이렇게 좋은 장면 이후, 영화는 계속 멜로 드라마적 요소로 관객을 이끈다. 불구이되 불구 아닌 몸으로 아내와 조우하는 알렉스 머피. 그리고 끝내 다시 만나게 되는 아들. 그 장면에서의 대사 사이 여백들이 좋고, 이후 파트너와 다시 만나 실없이 구는 알렉스의 표정과 대사들도 굉장히 좋게 느껴진다.

리뉴얼된 로보캅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릴 만하다. 좋게 이야기하면 일단 현대화가 잘 됐다. 세련되고 쿨해졌다. 흡사 아이언맨처럼 보이기도. 그러나 또 나쁘게 말하면, 원작의 그 둔탁하고 거친 느낌은 많이 휘발된 게 사실. 이건 추억이나 취향에 따라서 아마 좋게 느껴지거나 나쁘게 느껴질 것 같음.

그러나 액션 부분에서만큼은 거의 호불호 갈릴 것 없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일단 전체적으로 요즈음의 블록버스터답지 않게 액션의 함량이 적다. 스케일도 작고. 그리고 무엇보다 개별 액션 시퀀스들의 디자인이 재미없다. 불이 꺼져 어두운 범죄자 소굴에서 악당들과 로보캅이 일대다수로 한 판 붙는 장면은 그야말로 잘 보이지 않아 그 감흥이 덜하다. <킥애스 - 영웅의 탄생> 속 힛걸 액션 시퀀스를 벤치마킹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영화의 그 장면은 격발되는 총구의 불꽃과 번짝이는 손전등의 불빛으로 굉장히 멋지게 연출된 장면이었다고. 이 영화는 그냥 그걸 어설프게 따라한 정도에서 그친다. 더불어 ED 209 여러대와 대치하는 클라이막스 장면도 좀 무미건조. 좀 더 영리하고 다채로운 방식을 사용해 싸우는 연출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가장 이해 안 가는 부분은 클라이막스의 마지막 부분이다.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 악덕 CEO과연 악덕 기업가 연기의 본좌를 주인공이 죽여버리는 장면. 분명히 격발하지 못하게 프로그램 되어 있어 힘들어하는 묘사가 있는데, 이내 그냥 별다른 아이디어없이 쏴버리고 상황 종료. '주인공의 인간적 자유의지와 노력이 끝내 격발을 성공시켰다!'로 이해하기엔 너무 끙끙 대기만 하다가 쏴버린 것 같아서 좀 별로.

명색이 액션 영화임에도 액션의 분량과 파괴력 면에서 구린 영화. 그러나 그 외의 인간적인 요소들이 너무나 내 마음을 때려서 마냥 나쁘게 만은 보고 싶지 않은 영화. 다른 건 몰라도 원작에 비해 그 사유력만큼은 업그레이드 되었다고 생각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