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18:12

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 극장전 (신작)


마법의 기적이 잊혀진 세상. 형제에게 죽은 아버지를 단 하루동안 되살릴 수 있는 마법의 순간이 찾아온다. 허나 첫 술에 배부르랴. 마법 지팡이를 요리조리 허접한 발 컨트롤로 작동시키다, 죽었던 아버지의 딱 절반만을 소환하게 된 형제. 근데 시바 상반신도 아니고 딱 1/2 하반신만 데려왔네. 이게 호러가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냐.


열려라, 스포천국!


신선한 상상력의 강자라고 할 수 있는 픽사 스튜디오의 신작이고, 본편에서도 오프닝을 할애해가며 영화의 기초 세계관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근데 바로 거기에 이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존재함. 다름 아니라 영화의 세계관이 빌어먹도록 재미없다는 것. 

인간 없는 중간계 컨셉으로 엘프와 사이클롭, 켄타우로스 등이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 언제나 마법이 세상의 중심이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어느새 마법보다 편리한 테크놀러지로 그 중심축이 바뀐 세계. 그래서 인간 없는 곳을 엘프들이 채우고, 켄타우로스는 네 발 대신 자동차의 네 바퀴로 달리며, 조그마한 요정들이 날개보다 오토바이에 기대 폭주족으로 살아가는 묘사. 만티코어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매니저로 근무하고, 사이클롭이 스마트폰을 든 채 출근하며, 조그마한 용들이 애완동물로 키워지는 세상. ......이게 생각보다 재미있질 않다.

<주토피아>를 생각해보면 답이 딱 나온다. 그 영화 속에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없었다. 그 빈자리를 각종 동물들이 채웠었지. 그리고 그 구체적인 묘사들을 <주토피아>는 썩 잘 해내는 편이었다. 목이 긴 기린은 층고가 높은 건물에서 일을 하며, 몸이 조그마한 햄스터와 쥐들은 자신의 체구에 맞는 조그마한 기차칸에 몸을 싣는다. 표범이나 도마뱀 등 열대우림 기후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도시의 열대우림 지역에서 살아가고, 북극곰이나 바다표범처럼 추운 기후에 적응된 동물들은 눈이 내리는 곳에서 살아간다. 이처럼 <주토피아>엔 세계관을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구체적인 묘사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온워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실패한다. 막말로 이 영화 속 엘프나 사이클롭 같은 존재들은 '인간'으로 모조리 대체 되어도 상관없다. 인간이 스마트폰 두들기며 출근하는 거랑 엘프가 스마트폰 두들기며 출근하는 거랑 대체 뭐가 다르냐. 대체 뭐가 더 재밌는 거냐고. 그리고 아무리 자기 네 발로 달리는 게 어색해진 켄타우로스들의 세상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세상에 켄타우로스가 존재한다면 최소한 네 발 달린 켄타우로스용 자동차도 존재해야 말이 되는 거 아니야? 근데 이 세계관은 네 발 달린 켄타우로스나 두 발 달린 엘프나 모두 같은 내부구조의 자동차를 타는 모양이다. 탈 때마다 존나 불편하게 타던데.

이런 현실 대체 이세계 장르는 현세계의 어떤 구체적 상황을 색다르게 묘사하는 데에서 재미가 온다. 막말로 이세계까지 안 가더라도, 조선을 배경으로 했던 수많은 퓨전사극들이 다 그런 식으로 재미줬었잖아. 나무 베어다가 만든 런닝머신, 임금이 직접 기획 개발한 잠수함 등. 그게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떠나 일단 그 시대를 배경으로 뭔가 믹스 매치를 하려고 했었잖아. 근데 정작 애니메이션인 이 영화엔 그런 게 없다. 세계관부터 그 모양이니 영화 자체가 잘 납득이 안 됨.

유머도 좀 실패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음. 만티코어의 주점이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운영된다거나, 만티코어가 혼잣말하다가 지랄하게 되는 장면은 니쥬를 좀 못 깐 느낌. 심지어 이후 만티코어는 주인공 형제의 엄마를 사건 현장으로 곱게 모셔다 드리는 드랍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존재로 전락한다. 다만 전당포 주인의 장사치 마인드는 좀 웃겼음.

픽사답게 막판 감동 포인트로 다 때려부수며 마무리 하려 했던 영화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나도 이 영화에 대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펴졌던 것 같다. 끝내 온전히 귀환한 아버지의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가까이 보여주지 않아 좋았고, 이미 죽은 아버지를 기리되 지금 내 아버지 같은 존재에 대하여 언급하는 영화여서 한 번 더 좋았다. 부재를 기리고, 존재를 느끼게하는 퀘스트였다고 하면 말이 될까.

물론 막판에 좀 괜찮아졌다고 해서 그냥 그랬던 영화가 다 좋아졌던 것은 아니다. 댄 스캔론 이 양반은 <몬스터 대학>에서도 <몬스터 주식회사>의 아성을 말아먹더니 이번 영화에서도 영 타율이 좋지 않네. 당신, 삼진아웃이라는 말 들어보았나?

핑백

  • DID U MISS ME ? : 소울 2021-01-21 12:11:42 #

    ... 픽사도 이제 더이상 성역이 아니다. 불패신화로 유명하던 천상계의 이 회사는 &lt;카&gt;와 &lt;메리다와 마법의 숲&gt;, &lt;굿 다이노&gt;, &lt;온워드&gt; 등의 작품들을 통해 점차 인간계로 내려왔다. 물론 그것들이 형편없기만 한 작품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꽤 괜찮은 영화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비 ... more

  • DID U MISS ME ? : 루카 2021-06-22 14:51:53 #

    ... 는 그야말로 원 히트 원더 아닌 올 히트 원더의 표본이였다. 가히 신계의 무공이었지. 그러나 &lt;카&gt; 트릴로지와 &lt;굿 다이노&gt;, &lt;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gt; 등의 평작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부터, 픽사는 인간계로 조금씩 떨어지는 듯한 인상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lt;루카&gt; 역시 아쉬 ... more

  • DID U MISS ME ? : 메이의 새빨간 비밀 2022-03-23 14:15:11 #

    ... &lt;라따뚜이&gt;, &lt;업&gt;과 같은 영화들에 비교한다면 당연히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나. 하여튼 바로 그 때문에 어쩔 수 없게도, &lt;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gt;, &lt;루카&gt;와 함께 &lt;메이의 새빨간 비밀&gt;은 일종의 픽사 위기설에 땔감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픽사가 ... more

  • DID U MISS ME ? : 버즈 라이트이어 2022-06-17 13:43:52 #

    ... 야말로 극장용 애니메이션 업계의 만신전을 혼자서 만든 스튜디오였으니. 물론 이후 &lt;메리다와 마법의 숲&gt;이라든지 &lt;굿 다이노&gt;, &lt;온워드 - 단 하루의 기적&gt; 같은 범작들을 내놓으며 왕년의 그 기세가 조금 꺾이긴 했지만... 하지만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더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lt;인사 ... more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