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소리를 핵심 컨셉으로 잡은 음악 영화. 근데 '판소리' 자체가 가락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핵심으로 삼는 장르이다 보니 어떻게보면 좀 뮤지컬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여튼 컨셉은 되게 잘 잡았다고 생각했음. 한국적이면서도 음악 영화 또는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컨벤션을 잘 갖고 놀 수도 있는 기획처럼 보였으니.
막상 본 영화는, 좀 많이 나이브하다는 인상이다. 조선의 근간을 뒤흔드는 전국적 인신매매 범죄조직과 정치사범들이 떼로 몰려 나오는 영화임에도 전개가 존나 순수하다. 현실적 개연성과는 많이 동 떨어져 있는 영화. 그러니까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싫을 수도 있고, 그 말도 안 되는 동화적 순수성이 좋을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좀 애매하긴 했지만, 그래도 후자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판소리라는 소재부터 <서편제>가 아니 떠오를 수 없는 영화인데, 예술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갖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서편제>는 최고의 소리를 내게 하기 위해서 주인공이 자신의 딸을 눈 멀게 하지 않는가. 하지만 <소리꾼>의 주인공은 이미 눈 먼 딸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려보고자 만들어진 이야기 내에서 자신이 봉사가 된다. <서편제>가 예술을 위해 갈아넣어지는 인간성을 비춘 영화라면, <소리꾼>은 예술로 얻은 공감과 구원에 대해 말하는 영화라고 해야하나.
자신의 삶과 경험을 예술의 재료로 쓰는 묘사를 아무래도 영화가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에 있어서 큰 불만은 없다. 내가 원체 이런 전개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영화가 이 부분에서만큼은 크게 억지부린다는 느낌도 덜해서.
서양 사람들이 중세 기사에, 일본 사람들이 사무라이에 갖고 있는 로망과 환상처럼, 한국 사람들은 암행어사라면 사족을 못 쓴다. 일단 전개 자체가 시원하잖아. 조금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럽긴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와 호쾌하게 악당들 패는 공권력 쇼맨십. 이거 싫어할 한국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암행어사의 쾌감이 본격적으로 작동하는 후반부가 개연성 면에서 엄청나게 많이 딸리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순수한 쾌감 자체는 더할 나위 없었다고 생각한다. 대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인공 일행이 팔도 유랑하다가 순전히 운빨로 신분을 감춘 암행어사를 동료로 맞아들였다는 설정이 많이 깨긴 함.
판소리 장면들엔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다. 일단 주연을 꿰찬 이봉근 명창의 압도적인 판소리 퍼포먼스가 그 중심에 서 있음. 문제는, 그 판소리 장면들이 나올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 영화인가? 아니면 뮤직비디오인가? 판소리의 극중 내용을 비주얼로 구현하는 부분에 있어서 별다른 고민을 안 한 느낌이다. 그러다보니 극과 극중극의 경계가 애매하게 허물어지고, 또 헷갈리기도 함.
똑같은 판소리 퍼포먼스를 관람하고도 당시 민초들과 양반들의 감상이 다르다는 것 역시 재미있다. 심청전을 듣고 공감하며 우는 민초들, 그리고 대체 이게 뭐가 좋냐고 일갈하며 판을 뒤엎으려는 양반들. 당시 두 계급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져 있었는지를 얕게나마 보여주는 것 같았다.
하여간에 영화가 괜찮다가도 평범해져 무난하게 느껴지기는 하는데, 그 특유의 나이브함 때문에 괜히 기분 좋았던 영화. 만듦새까지 쩔었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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