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7 15:44

밤쉘 -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 극장전 (신작)


포스터 카피라이트에도 써 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진짜로 <빅 쇼트> 느낌이 많이 난다. 엄밀히 따지면 아담 멕케이의 연출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레퍼런스 삼은 영화라고나 할까. 애초 실화 소재인데다 부조리한 상황을 뚫고 나가는 박력이 중요한 영화고, 그 쌓인 울분과 통렬한 한 방 끝에 관객을 잘 태워야 하는 연출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런 아담 멕케이 식의 연출애 꽤 상성 좋은 편이었다고 하겠다. 

사회 부조리 고발극에는 항상 마음을 움직이는 인물들이 있다. 그건 부조리에 당하고만 있는 사람도 아니며, 부조리를 가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굳이 가담하지 않아도 되었던 자'다. 그리고 '가담하는 순간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관객 입장으로서는 아무래도 샤를리즈 테론의 '메긴 켈리'에게 마음이 동할 수 밖에.

물론 이 모든 사태의 시발점이 되어 용기 있게 폭로를 감행한 니콜 키드먼의 '그레천' 역시 대단하다. 내가 과연 그녀였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더불어 노골적인 피해자이자 모든 걸 감내할 수 밖에 없었던 마고 로비의 '케일라'에게도 역시 마음이 간다. 그러나 메긴은? 굳이 따지면, 메긴은 '로저'에게 그레천이나 케일라가 당했던 것만큼의 성희롱 또는 성추행을 당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만큼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가 피해자 행세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도 비교적 상관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미 잘 나가는 TV 쇼 진행자였고, 현재의 시점에서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로저와 껄끄럽기만 한 사이가 아녔으며, 그래서 무엇보다도 잃을 게 많았다. 영화가 그걸 계속 강조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녀의 평범한 남편과 평범한 아이들. 메긴이 그레천의 편에 가담한다면, 그녀는 커리어와 가족의 행복 모두를 잃을 수도 있었다.

어린 자녀, 특히 어린 '딸'을 강조하는 부분이 크게 두 번 있다. 하나는 상술 했듯이 메긴이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리고 두번째 순간은 다름아닌 그레천에게 존재한다. 그레천은 딸을 본다. 그에 못지 않게 소중할 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여기서는 그녀가 딸을 보는 시선이 더 강조된다. '내가 당했던 일'을 내 딸은 당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 내 세대의 악습을 내 다음 세대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투지. 그리고 이 쇼트의 의지와 투지는 이후 메긴에게로 옮아간다. 메긴 역시 곤히 잠든 자신의 딸을 바라본다. 그리고 여기에서 뭔가를 느낀 메긴은, 기어코 그레천의 폭로에 가담 하고야 만다. 내 다음 세대를 위한 의지와 투지는 이토록 옳게 전염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미니멀하게 사용되다가 그녀들이 곤경에 처하는 순간 아카펠라 마냥 솟구치는 배경 음악의 연출이 좋고, 결정적인 순간들을 <빅 쇼트> 또는 다큐멘터리 마냥 퀵 줌 인으로 담아내는 부분들 역시 좋다. 그러나 결말부에 이르러 영화가 다소 교조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뭘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겠다. 이 모든 난리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세상이 바로서지는 않을 것이다. 한 대 때렸다고 해서 이 모든 악폐습이 바로 쓰러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보임에도, 우리는 끝까지 부딪히고 싸워내 결국 쟁취 해야만 한다. 메시지는 좋지. 그런데 그 메시지를 노골적인 내레이션으로 담고, 또 그 노골적인 내레이션을 다른 이도 아닌 케일라의 입으로 옮긴 것은 다소 황망해 보인다. 그녀의 고통? 물론 알지. 그녀가 고통스럽지 않았다는 게 아냐. 그럼에도 그 마지막 순간의 교조적 내레이션을 던질 거라면 좀 더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았겠냐는 거지. 내게 있어선 영화가 잘 나가다가 막판에 삐끗하는 듯한 인상이었다.

뱀발 - 국내개봉 부제는 좀 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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