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2 17:32

호신술의 모든 것, 2019 대여점 (구작)


이상하게도 난 동네마다 꼭 하나씩은 존재하는 태권도장이나 검도장 등에 어릴 때부터 신비함을 느껴왔다. 태권도나 검도가 모두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무예들이기에 신비로운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아니, 그런 종류의 신비로움이 아니라 그 공간과 그 분위기가 주는 신비 말이다. 방어술이든 호신술이든 간에 어쨌거나 타인을 공격해 제압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고, 특유의 사제계급 문화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정말 곳곳에 있지 않은가. 어릴 적 나는 그런 곳이야말로 남파공작 간첩이나 비밀 스파이들이 은신해 있기 딱 좋은 곳이라고 느꼈었다. 하여튼 무도장은 언제나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라는 이야기. 그래서 옛날에 <김관장 vs 김관장 vs 김관장>이라는 영화 나왔을 때도 진짜 신박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물론 영화 자체가 별로였던 데다가 그런 쪽을 다루는 내용도 아니었기 때문에 괜히 더 언급해봤자 민망 하기만 할거다.

잡설이 길어졌는데, 바로 그러한 점들 때문에 <호신술의 모든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실제로 일정 부분 그 기대치를 채워주기도 했다. 짐짓 평범해보이는 동네 가라테 수련장. 그 곳을 이끌고 있는 미스테리한 관장과 사람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전대미문의 사건에 휘말리는 주인공 역할로 제시 아이젠버그라니. 이 인간은 최소 평범하거나, 최대 찌질 해보이기까지 하는 소시민을 전담으로 하는 배우 아니였던가. 그가 연기하면 그게 IT 억만장자든 수퍼맨의 숙적이든 간에 죄다 찌질 해보이거나 안쓰러워보이는 것이다. 캐스팅은 존나 잘했다고 본다.

영화 자체는 좀 난해한 편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나 <사라진 시간>처럼 내용 자체가 난해한 건 아닌데, 다 보고 나면 결국 무엇을 이야기하기 위한 영화였는가-에 대해서 좀 난해한 느낌. 개인적으로는 제목을 '파시즘의 모든 것'으로 바꿔도 괜찮을 법 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파시즘 또는 전체주의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가라테 자체가 일본 무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미 사망한 것으로 나오는 이 도장의 최고 스승이 일본인이다. 이미 죽은지 한참인 것 같은데도 도장에 출석하는 모두가 고인의 사진을 보고 인사를 올린다. 벽에 덩그러니 걸려있는 남자의 사진을 두고 고개를 숙이는 인사라... 독일도 생각나고 중간에 독일 셰퍼드도 언급된다 일본도 생각나지만 멀리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 바로 윗동네만 떠올려도 꽤 그럴 듯 하지 않나. 

존나 웃긴 건 그 대스승이 존나 어이없게 죽었다는 것이다. 갈고 닦은 가라테로 정의를 수호하다가 죽은 것도 아니요, 죽을 병에 걸려 운명 앞에 바스러져 간 것도 아니다. 산 타다가 사냥꾼이 쏜 총에 맞아 죽음;; 그것도 뭐 둘이 싸웠다거나 사냥꾼이 죽이려고 의도적으로 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새인 줄 알고 쐈대. 이렇게 멋대가리 없는 무용담이 또 있을까.

이 모든 건 결국 별 것도 아닌 이상과 사람에게 절을 하고 복종하는 사람들의 이미지로 귀결된다. 철저한 사회적 계급이 있고, 남을 해하는 것으로 인정 받으며, 오직 복종만이 최선의 미덕으로 군림하는 곳. 우리의 주인공은 그 시스템을 총 한자루로 전복 시켜버린다. 근데 시팔 다 끝내놓고 다시 그 시스템 안으로 자랑스럽게 기어들어가는 꼴이 우습다. 파시즘의 세뇌란 이렇게도 무서운 것이다.

여러가지 잔재미들이 있지만, 사실 영화 내용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점에서 좀 감점 요소도 있다. 어쨌거나 미스테리를 주 무기로 밀고 나가는 영화인 건데 초반 10분 만에 결말까지 다 맞춰버렸음. 세부적인 부분들에서는 간파가 어려웠지만 큰 줄기는 그냥 떡하니 보이더라. 이 미스테리만 좀만 더 다듬었으면 훨씬 더 좋은 영화가 되었을 텐데 아쉬운 부분.

덧글

  • 로그온티어 2020/07/26 23:17 # 삭제 답글

    저는 주제보단, 주인공의 찌질함을 집중해서 봤어요. 뭔가 기괴한데, 뭔가 진짜로 있을 법한 소심한 찌질함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거기 집중한 영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체주의라니.. 오.. 모든 게 설명되니까요. 생각해볼 게 많았네요. 한번 볼까...
    근데 이러니까 한편으로는, [남산의 부장들]도 생각나는 군요 (...)
  • CINEKOON 2020/08/08 02:34 #

    사실 <남산의 부장들>은 멜로 영화라서...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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