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8 17:08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4 대여점 (구작)


되게 특이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에 제작된 실화 베이스의 전쟁 영화이면서도, 전쟁 그 자체를 비판하는 뉘앙스미국적 영웅주의 국뽕 영화 뉘앙스 그 사이에서 어느 하나 극단적인 길로 빠지지 않고 균형을 유지하는 영화. 그러니까 그런 의심이 들 수 있잖아. 요즘 만들어지는 전쟁 영화들이 으레 그렇듯, '이거 미국이 스스로의 과오를 반성하며 전쟁의 참상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자기반성적 영화인가?'라는 생각. 허나 그렇다고 보기엔 주인공을 너무 영웅적으로 그리잖아. 그리고 적국의 테러리스트들을 딱히 인간적으로 묘사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럼 완전히 반대로,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할리우드에서 많이 만들어졌던 미국 우월주의 영웅 서사인 건가?'라고 또 생각하게 되지. 근데 존나 웃긴 건 그것 역시 아니라는 거다. 주인공을 영웅으로 그려내고 있기는 해도 그가 겪는 실존적 고민과 트라우마가 나름 세세하게 묘사되고, 국군장병들을 소모품 비슷하게 취급하는 국가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일견 비판적인 시각 역시 견지하고 있잖아. 고로 대체 이 영화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그러다보니 이 모든 것이 그 반대급부로, 오히려 굉장히 객관적인 노선을 취하기 위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노력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진보의 자기반성적 태도도 아니고, 보수의 애국주의적 태도도 아니라면 결국 이게 진짜 객관적인 거 아니냐는 생각. 그러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함께 나오는 실제 주인공 크리스 카일의 추모 장면 풋티지를 보며 어떤 생각이 확고해졌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스스로가 본인이 강경 우파임을 굳이 숨기려들진 않지만, 이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정치적인 것 모두 제거하고 그저 한 명의 인간을 추모하고 싶었던 것뿐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존재했던 전설적인 저격수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치고는 전쟁 영화적 쾌감이 그리 크지 않다. 애초 전쟁의 활극적 묘사를 지양했기 때문이겠지만 그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액션 쾌감은 별로 없는 편. 오히려 저격수로 살았던 한 명의 인간을 추모할 생각으로 만든 영화답게 그가 겪었던 일들과 저격수로서의 생활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에 더 공을 들이는 영화다. 네이비 실 훈련 받는 장면부터 시작해 실제로 배치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들이 꽤 재미있는 디테일들로 채워져있다. 대부분의 전쟁 영화들이 다 그렇겠지만, 아마 대한민국의 예비역들이라면 다 왕년 들먹이면서 볼 수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싶기도 함. 나조차도 사격 훈련 장면에서 교관이 엎드려 쏴 자세의 병사 발꿈치를 지그시 눌러주는 거 보고 키득거림. 그래봤자 네이비 실의 '네'자도 모르지만 말이다. 

실제 크리스 카일도 그랬겠지만, 이스트우드는 주인공의 전쟁에 대한 집착을 의무감과 죄의식으로 풀어낸다. 크리스 카일이 안전한 미국 본토의 가족 품으로 돌아와서까지 전쟁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전우들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제거하지 못한 적의 저격수 때문에 죽어나가는 전우들 때문이며, 이는 곧 집착으로 이어진다. 클라이막스 장면에서 본인과 팀이 위험해질 것을 알았음에도 굳이 적 저격수에게 한 발 꽂아준 건 바로 그 때문이겠지. 어떻게 보면 캐서린 비글로우의 <제로 다크 서티> 마지막이 떠오르기도 하는 지점이다. 끝까지 집착하고 또 집착했던 무언가를 끝내 완성하고도 느껴지는, 아니 완성했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공허함. 근데 또 '집착'이라는 키워드로 풀면 역시 캐서린 비글로우의 작품인 <허트 로커>와도 좀 유사해보임. 물론 <허트 로커>는 그걸 집착을 넘어선 '중독'으로 표현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실화 베이스라지만 결말이 여전히 충공깽하게 느껴진다. 적국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본국에서 죽게 되는 아이러니. 자신이 쫓았던 사람에게가 아닌 자신이 도와주던 사람에게 죽게 되는 씁쓸함. 스스로를 구원했던 사람이 타인을 구원하다가 죽게 되는 비정함. 씨바 잊을래도 잊을 수가 없는 결말이네, 진짜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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