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 대부분을 다 좋아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따져 본다면 <7인의 사무라이> 다음으로 랭크 해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이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마음에 안드는 건 제목 하나 밖에 없는 것 같음.
조지 루카스가 <스타워즈>를 만드는 데에 지대한 공헌을 했던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나, 딱 그 관점으로만 영화를 본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오비완 케노비나 레아 오르가나가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인물들이 있고, 그들이 겪는 여정 역시도 <스타워즈>의 그것과 유사하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기준에서 본다면 내용과 전개 자체가 꽤 왕도적인 편이라 <스타워즈>가 막 떠오르는 편은 아님.
앞서 말했듯 전개 자체는 좋게 말해 클래식한 편이고, 나쁘게 말해 전형적인 편이다. 그러나 전개의 세부적인 묘사들이 재밌어서 런닝타임이 긴 편인데도 쭉 보게 된다. 백성들을 두고 홀로 살아남은 왕족의 딜레마라든지, 무사의 책임감 따위도 꽤 비중있게 묘사되지만 그럼에도 제일 재밌는 건 '타헤이'와 '마타시치' 콤비의 콩트 아닌 콩트. 사실 대사나 개그 타이밍 등이 꽤 고전적인 편이라 어떻게 보면 좀 촌스럽기도 하다. 근데 이상하게 그 특유의 맛 자체가 존나 좋음. 보다보면 '로쿠로타'에게 빙의해 븅신들 소리 절로 나옴. 근데 또 마냥 버리고 가기에는 너무 측은하고 매력있는 인간들.
<7인의 사무라이>에 이어 사무라이로 표현되는 무사 계급 또는 공주로 대표되는 귀족 계급을 묘사 하면서도, 그 중심엔 철저히 평민 또는 하층민을 놓은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이다. 영화의 첫 쇼트와 마지막 쇼트를 장식하는 게 타헤이랑 마타시치 콤비라니까.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마냥 사무라이들의 멋만으로 영화를 전개시키지 않는다. 보다보면 하층민들의 입장에 천천히 이입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
꽤 오랜만의 재감상이었는데, 다시 봐도 연출 하나만은 최고더라. 로쿠로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의 롱 쇼트는 처음 보는 것이 아님에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수준. 흑백 영화라 잘 드러나는 편이 아님에도 흙먼지나 나뭇잎들을 통해 바람을 표현하며 쇼트에 활력을 더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멋진 연출이 여전히 효과적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여튼 존나 재밌는 영화라서 좋아함. 고전 중의 고전 임에도 <스타워즈>라는 활극에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건 그 자체로 엔터테인먼트적 요소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제목만 좀 다른 걸로 바꾸고 싶음. '숨은 요새'가 영화 내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건 아니잖아. 더불어 로쿠로타, 타헤이, 마타시치 셋 다 그렇게 악인 같지도 않아서.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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