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양우석 유니버스 ver. 2. 전작이 훌륭했던 건 상상력 때문이 아니었다. 실행력과 그 세밀함 덕분이었지. 남한과 북한의 대립이라는 닳고 닳은 소재를 가져다 썼으면서도, 양우석은 그 격전의 장을 크게 넓혀나감과 동시에 세밀한 부분의 묘사까지도 잊지 않은 사람이었다. 1편 이야기를 하면서 류승완의 <베를린>과 에둘러 비교를 한 적도 있었지. <베를린> 정말 재밌는 영화였지만, 모사드나 CIA까지 끌어들인 것 치고는 이야기를 굴리는 방식이 소규모인데다 답답했거든. 그러나 <강철비>는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 일본, 여기에 러시아까지 간접적으로 다루면서도 디테일한 묘사를 끝까지 강행했던 영화였다. 그렇다면 과연 <강철비2 - 정상회담>은?
스포회담!
감각 하나는 여전하다고 해야겠다. 이번 속편 역시도 횡으로 넓은 이야기를 다루는 동시에 종으로 깊은 메시지까지 담고 있다.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감독이 극동아시아 정세를 전공했을 거라는 오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남, 북, 중, 일을 중심으로 한 외교 정세에 능통해 보인다. 뭐, 그거야 전편에서도 느꼈던 것이긴 하지. 근데 이번엔 더해. <유령> 이후 제대로된 한국 잠수함 영화를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 2편은 후반부 전개를 몽땅 핵잠수함 내에서 해결하며 밀리터리 영화로써의 매력을 더한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잠수함 내의 디테일한 묘사들이 또 필요했겠지. 양우석 감독은 이 방면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것도 누가보면 해군으로 잠수함 생활 좀 해본 줄 알겠어.
잠수함 영화들 중 최근작으로 <헌터 킬러>를 굉장히 재밌게 봤었는데, 잠수함 파트만 놓고 보면 그렇게 많이 뒤처지지 않는 느낌이다. 어뢰 공격이나 회피 기동 등 잠수함의 특징과 동선을 활용한 액션도 보여주지만, 좁디 좁은 함내에서 두 진영이 전투를 치른다-라는 꽤 매력적이고 신선한 소재까지 붙여 그 자체로 꽤 재미있는 전개를 보여준다. 여기에 남북미 정상들의 함내 비정상회담까지. 어떤 사람들은 이 파트가 지나치게 SNL스러워서 불호라고 하던데, 그래도 나는 꽤 웃기고 재밌더라. 물론 화장실 개그와 물리적인 분량은 좀 덜어내면 더 좋았을 것.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전편에 이어 굉장히 명확한 편이다. 동족상잔의 비극. 같은 얼굴을 하고, 같은 말을 쓰는 한 민족이면서도 외부 세력들에 의해 갈라서게 된 안타까운 상황.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된 두 나라의 모습 같은 것들. 그 메시지들을 이미지로 산화시키는 장면이 바로 잠수함 내 전투 장면이었다. 좁고 세로로 긴 잠수함. 각각 함수와 함미를 차지하고 있는 진영들의 다툼. 그리고 애국과 평화라는 미명 하에 스러져가는 젊은 사람들. 중반부 등장하는 직부감 쇼트가 이 모든 메시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단점 역시 있는 영화다. 특유의 우직함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가끔 메시지가 너무 직접적이고 교조적으로 느껴진다는 점. 특히 바로 그 때문에, 영화의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을 주인공 대통령의 연설 장면은 아예 빼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음. 그리고 어떻게 보면 대놓고 국뽕 영화이기는 한데, 그래도 결말부 독도 장면은 너무 느끼하게만 느껴지더라.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거기서 독도가 안 나오는 것도 좀 이상하기야 하지. 앞에 독도 언급을 그렇게까지 깔아놨는데 막상 안 보여주고 끝내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냥 울릉도 앞에서 끝내는 것도 웃기고.
중반부의 수월한 전개를 위해 초반부에 전달하는 정보량이 좀 많아서 벅찰 수도 있기는 한데, 어쨌거나 전체적인 영화는 재밌게 본 편이었다. 후반부 잠수함 액션은 진짜 좋았음. 이러한 장르 영화들이 한국에서 더 약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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