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5 16:20

무간도, 2003 대여점 (구작)


홍콩 느와르의 마지막 불꽃과도 같은 영화. 그리고 눈빛 자체가 곧 시처럼 느껴지는 배우, 양조위의 슬픈 눈망울을 다시 보게끔 만드는 영화.


무간스포!


영화 자체가 많이 유명해져서 그렇지, 사실 범죄조직과 경찰 내에 침투한 스파이를 다루는 게 순수히 <무간도>만의 시그니처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영화 이전에 당장 <도니 브래스코> 같은 영화도 있지 않았나. 그럼에도 <무간도>가 이 소재의 대명사가 된 이유는, 개인적으로 특유의 그 멜랑콜리함 때문이라고 본다. 사실 다들 연출과 촬영이 훌륭하다고 하는데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고 보더라도 연출이나 편집이 다 촌스럽게 느껴지더라고. 마감이 좀 덜된 제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결국 기술적 만듦새보다도, 영화에 깃든 특유의 그 '낭만적 쓸쓸함'과 그걸 제대로 살려낸 배우들의 열연이 <무간도>를 인상깊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유건명'의 예비 신부이자 소설가인 '메리'가 그런 글을 쓴다. 여러 인격을 가진 사내에 대한 소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인격이 바뀌어서, 종국에는 진짜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자도 잊게되는. 이에 대해 유건명은 공포 소설이냐고 다소 심드렁하게 되묻는다. 그 소설 속 남자가, 자신과 똑같은 상황 속에 처해있음에도 그는 별 관심이 없어보인다.

메리의 소설 속 사내는 결국 유건명과 '진영인'이다. 각각 범죄자와 경찰로 시작했지만, 끝내는 그 위치가 180도 바뀌어버린 그 두 남자. 만약 메리가 자신의 소설에 대한 내용을 진영인에게 들려줬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내 생각에, 진영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특유의 그 슬픈 눈망울만을 또르르 굴렸을 것 같다. 범죄자로 시작했지만 이후 엘리트 경찰로서 성장한 유건명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진영인의 그것에 비해 비교적 적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애초 그는 출세주의자였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됐지 않았는가. 허나 경찰이었던 진영인은 타고난 정의감과 의무감으로 범죄자가 된다. 현재 자기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고 있는 유건명과 달리, 진영인은 과거의 자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때문에 메리의 그 이야기에 유건명은 심드렁할 뿐이지만, 진영인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특유의 그 쓸쓸한 미소만을 지었을 것이다. 

홍콩 반환 타이밍과 맞물려 정체성에 혼란을 맞은 홍콩인들. 그 모습을 두 주인공에게 잘 포개놓은 구성. 이렇듯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진영인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해놓고,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그를 허망한 죽음으로 내몬고야 만다. 영화 내내 쌓았던 감상주의들이,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씁쓸한 결말. 사실 이 한 편만으로도 충분한 영화이긴 하지만, '무간도'라는 제목의 의마를 재대로 곱씹기 위해서는 이후 시리즈의 3편까지 모두 감상해야 맞다. 근데 개인적으로는 이후 2편이나 3편이 다 이 1편만 못하다고 느껴서...

연출이나 편집의 촌스러움 외의 단점도 물론 있다. 정신과 의사와 진영인의 장면은 그 자체로 불필요하다는 인상이다. 물론 진영인이 유일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그럴 거라면 좀 더 세밀하게 묘사했어야지 않나 싶음. 지금의 버전은 좀 애매하게만 느껴져서.

하여튼 꽤 재밌는 영화지만, 어쨌거나 결론은 양조위로 귀결된다. 얌체처럼 구는 뺀질이 유덕화의 모습도 멋지지만, 이 영화에서의 양조위는 정말이지 대단했다. 정신과 상담실에서 곤히 잠든 모습의 그에게, 그저 따스한 이불 하나 재대로 덮어주고 싶었다. 잠깐이라도, 이 순간이라도 따뜻하게 자라고. 잘 자라고.

뱀발 - 옛날에 처음 봤을 때도 그랬는데, 여전히 증지위의 두목 연기는 적응이 안 된다. 연기를 못 한다는 말이 아니라, 너무 귀엽게 생겨서 별로 안 무섭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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