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5 23:43

디파티드, 2006 대여점 (구작)


홍콩 느와르의 마지막 끗발이었던 <무간도>의 서양식, 스콜세지식 리메이크. 근데 사실 배경이 홍콩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등장인물들이 동양인에서 서양인으로 바뀐 것 외에는 서양식 리메이크라는 것에 큰 방점이 찍혀 있진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결국 감독의 이름.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아닌 마틴 스콜세지가 직접 메가폰을 잡았다는 게 중요한 영화인 것. 그래서 결국 <무간도>는, 마틴 스콜세지 손에 의해 그 특유의 비열하고 추잡한 질감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원작과 본작 양방스포!


이야기의 토대와 그에 따른 전개는 원작과 비슷하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역시 인물들의 재구성. <무간도>의 '진영인'은 정신과 의사와 심적으로 나름의 깊은 관계를 맺지만,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었다. 이후 시리즈의 '유건명'도 마찬가지. 그러나 <디파티드>의 진영인 포지션인 '빌리 코스티건'은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정신과 의사와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깊은 관계를 맺는다. 더불어 유건명 포지션인 '콜린 설리반' 역시도 그 정신과 의사와 연애 전선을 형성하게 됨. 원작의 정신과 의사와 소설가였던 '메리'를 한 캐릭터로 합친 듯한 구성인 것. 이뿐 아니라 원작의 황국장 캐릭터 역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특이하게도 2분화로 인수분해 됐다. 각각 마틴 쉰과 마크 월버그가 연기하는 '퀴넌'. '딕넘'으로 분리된 것. 하여튼 캐릭터와 그 관계들에는 큰 변화가 있었던 리메이크.

<무간도>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는 시기 묘사를 통해 주인공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냈었다. 이에 <디파티드>는 홍콩 반환에 아일랜드계 이민자들로 응수한다. 기회의 땅이자 자본주의 끝판왕 국가라 할 수 있을 미국에서 단지 아일랜드계 이민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멍에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빌리 코스티건.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어레인지였다고 본다.

스콜세지의 특징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건 역시 특유의 그 현실감과 추잡함. <무간도>는 이전의 홍콩 느와르들이 으레 그랬듯, 연민에 젖은 감상주의로 범죄조직과 그 중심에 선 주인공을 멜랑콜리하게 바라보는 영화였다. 그러나 <디파티드>는 그 감상주의를 모조리 적출해 버리고야 만다. 남 등쳐먹고 사는 범죄자들에게 낭만 따위는 가당치도 않다는 스콜세지 특유의 그 태도. 때문에 마냥 멋스럽게 느껴졌던 원작의 감성은 이 영화에 이르러 더럽고 추잡한 그것으로 대체되었다. 극중 범죄자들이 하는 짓에 의리나 신의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그 사이엔 영웅도 없으며, 모두가 찌질한 행동으로 일관하다가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원작에서도 유건명은 얌체같은 인물이었지만, 이 영화의 콜린 설리반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경찰로서의 모습이나 직장동료로서의 모습, 심지어는 연애 상대의 모습으로서도 모조리 구질구질한 인물. 맷 데이먼이 샌님 같은 연기로 잘 살려준 것도 있겠지만... 하여튼 콜린 설리반의 이런 모습은 적당히 현실감 있으면서도 출세에 대한 욕망을 원작에 비해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 좋았음. 그러나 빌리 코스티건은 좀 아쉽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신경쇠약 직전의 얼굴로 잘 연기해주고는 있지만, 이건 원작의 양조위가 너무 강해서... 잭 니콜슨은 뭐 말할 게 없지. 원작의 증지위는 너무 귀엽게만 생겨서 무서움이 좀 덜했었잖아. 근데 여기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잭 니콜슨 아닌가. 잭 니콜슨!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염병할 허무주의적 결말은 원작이나 본작이나 모두 동일.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빌리와 콜린 모두가 다 죽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딕넘이라는 캐릭터를 새로 만들어 넣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근데 콜린이 죽는 결말은 그 자체로 속 시원해 좋기는 하나 원작의 '미완' 같은 느낌이 덜해 좀 아쉽다. 뭔가 권선징악적 결말에 대한 할리우드의 집착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물론 원작도 3편까지 보면 마찬가지지만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리메이크라고 생각한다. 물론 원작 특유의 그 멜랑콜리함이 없다는 건 아쉽지. 그러나 항상 말했듯, 리메이크하는 데에 있어서 원작과 무조건 똑같기만 한 게 무슨 재미인가. 문화권과 작가의 특징에 따라 조금이라도 다르게 만들기 위해 손대는 것이 리메이크의 본질 아닌가. 바로 그 측면에서 보자면 <디파티드>는 꽤 괜찮은 리메이크작이다. 원작이 더 좋다는 사람들이야 계속 원작을 더 좋아하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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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는.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나. 범죄자들은 미화되지 않고, 오직 비열하고 또 비열한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나. 그리고 대개 그들의 최후는 허무하면서도 비참하지 않나. &lt;택스 콜렉터&gt;가 딱 그렇다. 주인공이 뭔가 할 것 같았는데 죽어버린다. 또다른 주인공 역시 뭔가 할 것 같았고, 실제로 뭔가를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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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몇몇 인물들은 그 최후가 상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담당 배우의 유명세나 영화 속 물리적 비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정말로 마틴 스콜세지의 &lt;디파티드&gt; 같은 느낌도 난다. &lt;킹 아서 - 제왕의 검&gt;이나 &lt;알라딘&gt;에서는 좀 덜했었지만, 최근작인 &lt;젠틀맨&gt;에서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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