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8 01:48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극장전 (신작)


영화 보기 전에 제목만 보곤 어째 중2병스럽단 생각을 좀 했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나니 지금의 이 제목이 일종의 선포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스포에서 구하소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다소 중2병스러운 제목은, '우리는 애초부터 완벽한 걸작 만들 생각은 없고, 남들이 뭐라고 해도 하고 싶었던 것만 줄기차게 하겠다'라는 일종의 선언 내지 선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이 영화가 완벽한 영화인 것은 아니다. 단점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과거에 사로잡힌 인간 병기 한 남자가, 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범죄조직 전체와 맞선다는 이야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맨 온 파이어>고, 그 외에도 <레옹>부터 <테이큰>, <아저씨>, <지옥에서 온 전언>, <더 포리너>, <시큐리티> 등 이미 한 보따리다. 여기에 <언니>라는 영화도 있고...

그러니까 기시감이 강력하게 깃든 전형적인 이야기 구성은 분명 이 영화의 크나큰 단점이다. 더불어 세부적인 부분들에서도 아쉬움이 드러나는데, 이유불문 사냥감에 집착하는 이정재의 '레이'가 황정민의 '인남'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다소 섣부르게 느껴진다. 런닝타임을 조금 늘려서라도 그 둘이 맞붙을 수 있는 장면을 한 두개 더 넣으면 어땠을까. 말한 김에 또 하나 말하면 박정민의 '유이'와 인남과의 관계 역시 물리적, 감정적으로 좀 더 설명 했어야지 않을까 싶고.

그러나 나머지 장점들이 이 모든 단점들을 덮는다.

일단 영화가 전형적인데다 단순하니, 시원시원하게 치고 나가는 맛이 있다. 이미 존재하는 비슷한 영화들, 그리고 같은 장르의 다른 영화들을 영화 내부로 끌고 들어와 분위기 자체를 전달함으로써 전개가 굉장히 경제적으로 느껴진다. 인남과 레이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특히 인남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등을 간략하게 대충 설명해놔도 비슷한 다른 영화들을 많이 본 관객 입장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어렴풋하게 나마 추측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전개가 대쪽같이 빠르고, 영화는 쉴새없이 앞으로만 치고 나간다. 이는 '장르 영화'로써 이 영화가 얻은 수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후까시를 정말 잘 잡는다. 사실 이야기의 전형성에 있어서 떠오르는 다른 영화들이 이미 많았지만, 내게 있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특이하게도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였다. <드라이브>도 별 것 없이 후까시 잔뜩 잡는 영화거든. 근데 그 후까시들이 다 먹힌다. 다른 장점들도 많지만 그 후까시의 강력함이 <드라이브>의 가장 큰 무기였던 것이다. 그렇다. 때때로 장르 영화에서는 후까시가 전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속 촬영으로 강조한 슬로우 모션과 이미지 라인을 거침없이 깨버려 혼란스러운 상황을 강조한 연출. 더불어 특정 싸움 묘사에서 타격감과 속도감에 구두점을 찍기 위해 프레임 레이트를 조절한 것 역시 박력이 넘친다. 방콕에서 펼쳐지는 레이의 다찌마리 액션 씬이나 레이와 인남의 첫 대결, 인남의 일 대 다수 총격 액션 씬 등이 대단하다.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 장면들이 속출하고, 중간 중간 개연성이 사라지는 부분들도 없지 않지만 오로지 넘치는 후까시 하나만으로 그걸 다 커버 해버리는 패기.

제목이 주는 느낌과 더불어 구원과 관련된 메시지, 서사를 풀고 싶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상술했듯 유이와 딸에게 느끼는 인남의 감정이 그렇게 깊이 묘사 되지는 못해서 그 결말이 얕다. 근데... 그런데... 그런데도 엔딩의 가족 사진이 너무 강력하다. 별 것 아닌데 그냥 멜랑콜리를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살아갈 이유 없이 떠돌던 남자가 살아갈 이유를 만나고나서야 죽게 된다는 아이러니와 비극. 그리고 거기까지 달려가는데 터져나오는 패기와 박력. 그런 생각이 든다. 장르 영화로써 해야할 것은 다 했다고. 뭔가를 더하고, 조금 더 완벽 했으면 좋았겠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되었다고. 오락성에 올인하고 또 그 배당금을 나눠줄 수 있는 장르 영화는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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