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1 16:45

퍼블릭 에너미, 2009 대여점 (구작)


1930년대라는 시대배경만 제외하고 본다면 감독인 마이클 만의 전작 <히트>와 유사한 구성을 띄고 있는 영화다. 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성공한 은행 강도의 이야기를 다루며, 또 그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수사요원을 반대 진영으로 놓고 움직인다. 다만 <히트>가 은행 강도와 수사요원 사이의 무게추를 어느 한 쪽으로 쏠리지 않게 신들린 솜씨로 타협하는 반면, <퍼블릭 에너미>는 보다 좀 더 은행 강도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춘다는 게 포인트. 


퍼블릭 스포일러!


<히트>는 남자들의 이야기였던 동시에,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프로들의 이야기였다. 프로와 프로의 열기 어린 대격돌. 그러나 <퍼블릭 에너미>는 좀 다르다. 자신의 ‘일’에 과몰입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 땅 이 시대의 마지막 낭만주의자가 맞이한 비정한 상황과 그 최후에 좀 더 관심이 있는 듯한 느낌. 오죽하면 영화의 첫 시퀀스도 오래된 동료를 잃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끝난다.

실제로 주인공인 조니 뎁의 ‘존 딜린저’는 굉장히 낭만적인 사내로 묘사된다. 그 많은 돈을 훔치고도 옷 정도를 제외하면 과시적으로 쓰지도 않는다. 그가 진심으로 돈을 쓰는 상황은 단 몇 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선물을 사줄 때, 딱 그 정도. 물론 강도질의 주된 목적이 돈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는 대중들에게 스스로가 로빈후드처럼 비춰지기를 원한다. 영웅이 되기를 원하고 또 락스타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그의 은행 강도질엔 쇼맨십과 젠틀맨쉽이 짙게 베어있고, 사창가를 드나들거나 술에 전재산을 탕진하는 동료들과는 다르게 평소에도 고급 레스토랑과 영화 보는 것을 즐긴다. 

심지어 그의 최후도 영화관 앞에서 이루어졌지 않은가. 그는 이 비정한 시대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한 최후의 낭만주의자였던 것이다. 최후 직전까지도 스크린 속에 자신을 투영하며 미소 짓던 사내. 몸에 총알이 박힌 상태로도 사랑했던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는 것으로 유언을 대신하던 사내. 후반부에 그런 묘사가 있다.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았는지, 경찰서 내부 자신을 수사하는 팀의 사무실에 천역덕스럽게 들어가 이것저것 관광하는 존 딜린저의 모습. 그 곳 벽에 차례대로 걸려있는 것은 다름아닌 그의 옛 동료들 사진이었다. 다 체포되었거나, 죽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진들 끝자락에 놓여있는 것은 존 딜린저 그 자신. 모두 다 사냥 당하고도 끝까지 살아남은 사내.

그러나 마이클 만과 실제 역사는 낭만주의자에게 로맨틱한 최후를 선사하지 않는다. 갱스터 영화다운 마지막 총격전도 없이, 서부 영화스럽게 긴장감 넘치는 대결 장면도 없이. 영화를 보고 거리로 나선 존 딜린저는 자신의 뒤에서 날아온 총알에 어이없고도 허무한 최후를 맞는다. 어찌보면 마틴 스콜세지의 작가적 인장과도 꽤 유사하게 느껴지는 부분. 갱스터들 사이에 의리가 어디있고 낭만이 어디있어!-라고 스콜세지가 외치는 타입이라면, 마이클 만은 낭만적인 사람마저도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 미국사와 인간사라며 냉소어린 미소를 짓는 타입처럼 느껴진다. 

크리스찬 베일의 ‘멜빈 퍼비스’ 비중이 좀 더 컸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그랬으면 또 그건 그거대로 너무 <히트>와 비슷했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둘의 대결이 아니라 낭만주의자의 몰락이니까 말이다. 아, 그리고 개봉당시 극장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존 딜린저에게 막타 넣었던 배우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스티븐 랭이었더라고. 어떤 영화를 오랜만에 보면 이런 게 재밌다. 그 당시엔 못 알아봤던 배우를 내가 알아볼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나저나 영화가 후진 편도 아니었는데 왜 마이클 만은 그동안 오래 쉬었던 것처럼 느껴지지? 다 <블랙코드>가 망해서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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