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8 17:30

쿵푸 허슬, 2004 대여점 (구작)


주성치의 가장 세련된 걸작-,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프닝 장면만 놓고보면 그냥 고전적인 홍콩 느와르처럼 느껴진다. 능력 없고 매수된 경찰, 갱스터들의 잔혹한 처형 방식,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마구 죽이는 잔인함. 여기에 <대부> 이후로 이 장르의 전통이 된 ‘살해 이후의 교차편집’ 모멘트까지. 그러나 주성치는 여기에 잔혹한 도끼파 단원들이 추는 우스꽝스러운 댄스 장면을 넣음으로써 기어코 자기 색을 드러내고야 만다. <소림축구>가 스포츠 영화의 구성에 무협 장르의 고명을 두르고 주성치식 코미디를 양념삼는 것으로 마무리한 영화였다면, <쿵푸 허슬>의 레시피는 <소림축구>의 스포츠 영화적 구성 대신 갱스터 느와르 장르를 집어넣었을 뿐인 것이다.

일종의 ‘경지’를 항상 가장 ‘낮은 곳’에서 찾았던 주성치. <쿵푸 허슬> 역시 마찬가지다. 주거 만족도라고는 논하고 싶지도 않아 보이는 ‘돼지촌’. 하층민들이 모여살아 줄곧 무시받는 이 돼지촌에는, 이미 재야의 고수들이 숨어들어 살고 있었다. 여기에 그저 거리의 부랑자일 뿐이었던 주인공 ‘싱’ 역시 알고보면 여래신장 고수의 기운이 봉인되어 있던 사내였으니,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며 각성한다-라는 주성치식 대전제에 썩 잘 부합하는 편이다. 아, <소림축구>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사랑과 그에 대한 순수를 대변하는 여성 역시 거리에서 주전부리를 팔며 연명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됨. 주성치 월드엔 무소불위의 파워와 새하얗게 순수한 사랑 모두 다 길바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걸 알아보느냐 못 알아보느냐의 차이일 뿐.

주성치식 B급 코드가 원래 그렇기도 하고 애초 무협 장르 영화들이 좀 그런 경향도 있잖아, 만화적이랄까. <쿵푸 허슬> 역시 마찬가지인데, 진짜 연출 존나 잘했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 돼지촌의 숨은 고수들이 각성해 날뛰기 시작하는 부분의 액션 묘사도 좋지만, 극중 누군가가 상대의 머리를 후려쳐 기절시킬 때 등의 카메라 연출을 보면 진짜 만화적이고 키치하다. 그래서 좋다. 말그대로 카메라가 종으로 횡으로 시원하게 치고 나가던데. 더불어 그 만화적 연출의 정점에 서는 건 역시 현악기 킬러 콤비의 유령군대 소환 콤보. 어릴 적 봤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는데, 다 커서 다시 보니 어떻게 이런 연출을 실행했을까 싶음. 뒤이어 전개되는 사자후 연출 역시 훌륭한데, 개인적으로는 그것보다 태극권 쌉고수의 흐느적거림 연출이 더 좋았던 것 같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이 장면은 볼 때마다 뻘하게 터지네.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은 딱 하나 정도 밖에 없다. 명색이 주인공임에도 싱의 서사가 제대로 보여지지 않는다는 점. 전반부까지 돼지촌 고수 3인 + 도끼파 일당 + 사자후&태극권 커플의 존재감이 워낙 큰데다 이야기 전개에도 싱이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어서 그 존재감이 팍 죽어있다. 근데 또 그러다가 후반부 들어서는 갑자기 절대 영웅으로 각성하게 되니 그 부분에 있어서 개연성이 좀 떨어져보이는 것은 당연지사. 허나 또 장르가 장르이다보니 그 정도 개연성은 좀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줄 의향 역시 있음.

깨알같은 <샤이닝> 패러디. 옛날에 봤을 땐 이거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다시 보니 보이네. <쿵푸 허슬> 처음 봤던 나이에는 <샤이닝> 본 적이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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