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8 17:53

포세이큰, 2015 대여점 (구작)


우리가 뻔할 것을 알면서도 장르 영화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국엔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는 그 뻔함 자체를 즐기는 것. 그러니까 좀 전형적이고 재미없더라도, 그 이후 나올 장르적인 ‘무언가’를 위해 참고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둘째, ‘혹시라도’ 뻔할 줄 알았던 그 영화가 알고보니 클리셰 타파를 준비해두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그러니까 서부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포세이큰>에 기대하는 것은 별다른 게 아니었던 것이다. 타란티노 마냥 클리셰 타파하면? 엄청 좋지. 근데 딱 봐도 그런 한 방을 준비해둔 영화는 아닌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그럼 포기할 건 포기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야지. 서부영화 특유의 장르적인 쾌감을 줄 수 있느냐, 없느냐로.

영화 내용과 그 전개는 존나 뻔하다. 고전인 <셰인>부터 이후 숱하게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서부영화들, 심지어는 그 요소들을 현대적으로 어레인지한 <로건> 같은 수퍼히어로 영화에서도 이미 쓸데로 다 갖다썼던 내용대로 <포세이큰>은 흘러간다. 한 때 총 뽑고 돌리는 실력으로 알아주던 왕년의 무법자가 있었는데, 모종의 사건 이후로 개과천선하여 다시는 총을 들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던 와중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는 세력들이 나타나고, 과거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자 어떻게든 평화주의로 버티던 그 주인공이 끝내는 빡쳐서 총을 뽑곤 다 쓸어버린다는 내용. 시발... 교과서로 써도 되겠네.

솔직해지자. 그럼 이제 우리가 이 영화에 기대할 바를 한 번 말해보자고. 주인공 소개도 그렇고 동기, 성격, 결말 모두 다 뻔하잖아. 폭력 근절 캠페인 벌이는 주인공이 다시 총을 뽑아들기까지 존나 고구마 먹이는 전개로 관객들 괴롭힐 것도 알잖아. 그럼 그 모든 고통의 구간들을 우리가 끝까지 버티는 이유는 뭔데? 딱 하나지. 각성한 주인공이 존나 멋지게 악당들 다 털어먹고 사이다 전개 뽑아주는 거. 그거 하나 보려고 픽한 영화 아니었겠냐고.

<포세이큰>은 그 뻔한 길을 착실하게 따라간다. 그 중에는 주인공과 그 아버지의 갈등도 있고, 과거 벌어진 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회한도 있으며, 꼴에 데미 무어까지 캐스팅해다가 만든 애매한 러브 라인 역시 존재한다. 아,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지나갈 거 빨리 지나가고... 아, 이제 악당들이 나오는 군. 양아치 느낌이라 그렇게 카리스마 있고 무게감 넘치는 악역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막판엔 찌질이 마냥 질질 짜댈 게 뻔한 놈이니 이 정도 얄밉게 연출했으면 된 거지, 뭐. 그래, 이 양아치놈이 참고 있는 우리 주인공도 계속 건들여주고... 아, 드디어 주인공이 참고 참았던 분노를 터뜨릴 시간이군!

시팔, 근데 그걸 이렇게 처리해? 그거 하나 보려고 한 시간 15분여를 참고 본 건데, 이렇게 허무하고 간단하게 액션 끝내기 있다고? 명색이 왕년의 무법자가 주인공인 서부영화인데 그 전설적 인물이 보여주는 액션이 고작 이거 하나라고? 좁디 좁은 술집에서 주인공과 세네명의 악당 잔챙이들이 딱 이 정도만 보여주고 끝낸다고? 게다가 그 찌질한 양아치 악역은 제대로 사이다 보여주기도 전에 허무한 퇴장을 맞이하고... 아니, 시팔 이게 뭐냐고.

심지어 거기까지 가는 데에 주인공이 그렇게 멋져보이지도 않는다. 참고 참고 또 참는 주인공을 악당들이 무시하는 것은 괜찮다. <아저씨>에서도 그랬고 <테이큰>에서도 그랬으니. 근데 어째 아버지라는 작자가 나올 때마다 주인공인 아들을 그렇게 무시하고 있는데, 관객으로서 이 주인공이 멋있게 보이겠느냐고... 존나 아무리 천둥벌거숭이에 사고뭉치 아들이었어도 카메라 앞에서 만큼은 체면 좀 세워줬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지금은 아빠부터 아들을 개무시하고 있으니까 관객으로서 정이 별로 안 가잖아...

키퍼 서덜랜드와 도널드 서덜랜드 부자가 실제로 아들/아버지로 나온다. 근데 진짜 친부, 친자 사이임에도 그 케미스트리는 별로. 진짜 부자 사이 데려다가 이 정도 케미 밖에 안 나온 거면 그건 진짜 문제 있는 거 아니냐? 아니면 원래 둘이 서먹한가 브라이언 콕스가 메인 악당으로 나온다길래 기대한 것도 있었는데 뭐 아무 것도 없고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시팔..

보는내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얼마나 위대한 무법자였는지만을 다시금 상기시켰던 영화. 아, 당신 같은 무법자는 또 없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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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시무시했던 과거를 숨긴채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던 주인공이, 딸이 납치 되면서 왕년의 실력을 꺼내어 모두를 도륙하기에 이른다는 영화. 나도 안다. 이제 이런 내용의 영화들로도 팔만대장경 쓸 수 있을 정도라는 거. &lt;테이큰&gt;과 &lt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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