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1 15:36

위대한 레보스키, 1998 대여점 (구작)


코엔들은 언제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등장인물들의 삶으로 녹여내려다보니, 결국 언제나 그 등장인물들의 삶은 다소 수동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였다. 더불어 코엔 형제가 가진 특유의 허무주의적, 냉소적 뉘앙스도 그들의 삶에 침투하고. 그런 경향이 최근 작품일수록 더 강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함. <시리어스 맨>의 결말이나 <카우보이의 노래>를 통째로 떠올려보면 과연 그렇다. 하여튼 그들의 전반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위대한 레보스키> 역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번 경우에는 그 이야기의 컨셉이 '허풍'인 것만 같음.

허풍의 사전적인 정의는, '실제보다 지나치게 과장하여 믿음성이 없는 말이나 행동'이라고 한다. 이 영화 속 모든 이가 저 허풍의 사전적 의미에 맞춰 여러가지 오해를 사고 또 판다. 그래서 이야기도 더럽게 꼬이고. 근데 사전적 정의는 저렇지만, 우리가 결국 허풍을 떠는 이유는 뭔데? 목도리 도마뱀 마냥 자신을 커보이게 만들어 상대로부터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또는, 그냥 그렇게 허풍 떨며 이야기하는 게 진실된 자세로만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좀 더 재밌으니까. 코엔은 그 두가지 방법을 모두 다 쓰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이토록 크게 엇나갈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이 재미있다. 주인공 '레보스키'는 그냥 좀 한심한 백수 한량이었을 뿐이다. 그가 양아치 건달들한테 동명이인 부자로 오해받아 처맞는 거? 영화임을 감안하면 그것도 썩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 아주 특별해보이지도 않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 이후 전개를 꼬고 꼬고 또 꼰다. 동명이인 '레보스키'의 아내가 납치 당했는데 왜 그는 하필 주인공 듀드 레보스키를 고용한 것일까. 듀드는 왜 사건 현장에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월터'를 데려간 것일까. 굳이 데려갈 이유가 없었잖나! 물론 월터가 막무가내로 따라온 것에 가깝지만 게다가 월터는 소총을 들고 왔고, 그걸 또 쐈다. 부자 레보스키의 아내는 행방이 묘연하고, 말리부의 경찰서장은 듀드를 팼으며, 독일 갱단은 듀드를 쫓다가 월터에 의해 귀가 잘려나가고야 만다. 씨팔 이게 대체 뭔 소리야.

막무가내로 부풀린 전개의 얼토당토한 황당무계함에서 오는 점입가경의 재미. 코엔이 친 허풍은 꽤나 성공적이다. 그게 무슨 이야기이든 일단 구전되기 위해서는 '재미'있어야하는 게 맞지 않나. 바로 그 점에서 코엔의 허풍이 빛난다. 게다가 극중 인물들이 서로에게 떠벌린 허풍과 구라들이 다 촘촘히 엮여나가며 그런 전개를 맞이하는 거라 연출적으로도 맞고. 중간중간에 진짜 의미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의미없어 보이는 설정들이 난무하는데 원래 구전되는 허풍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니 애초부터 이런 컨셉인가 보다- 하고 넘기게 되는 마법도 있음. 아, 심지어 마지막엔 샘 엘리엇이 연기하는 낯선 이를 통해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내레이터마저 상정하고야 만다.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 이 영화의 이야기 역시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인간의 시작과 끝은 곧 탄생과 죽음. 주인공 듀드의 곁에서 벌어지는 그 수많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 중에는 자신의 정액을 받아 아이를 가지려는 미스테리한 여성이 하나 나오며, 또 그의 절친한 친구였으나 줄곧 무시받기 일쑤였던 대니는 장렬하기는 커녕 허무하기만 한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그 유골을 결국 듀드가 다 뒤집어쓰고. 하여튼 코엔은 이런 거 진짜 좋아한다.

연출은 미니멀하게 존나 잘했다. 초반부 듀드와 월터, 대니 3인방이 볼링장 한 구석에서 수다 떠는 씬이 진짜 백미임. 그와중에 나올 때마다 존나 빵빵 터뜨리는 존 굿맨의 월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답없는 새끼 진짜 개웃김.

이런 페이소스 강한 코미디만 하던 코엔이 갑자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영화 들고 나왔을 때 그 충격이 꽤 컸었지. 아, 말 나온 김에 갑자기 그 영화 또 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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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 2020/09/08 18:54 # 답글

    저는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이 영화를 보진 못했어요. 다만, 그렇게 그냥저냥 시선으로 보다가 유골 뒤집어쓰는 씬에서 빵터져서 숨을 못쉴 정도로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게 너무 웃겼어요.
  • CINEKOON 2020/09/22 20:37 #

    원래 웃긴 것에는 이유가 없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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