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4 16:14

좋은 친구들, 1991 대여점 (구작)


그냥 이건 개인적인 건데, 갱스터 느와르 장르의 역사를 짤막하게 요약해 핵심정리만 해야한다면 코폴라의 <대부> 본 다음에 이 영화만 보면 딱 끝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훌륭하고 재밌는 영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존나 길거든. 그리고 그 긴 런닝타임 동안 한 갱스터의 일대기를 보여줌으로써, 진짜 그 안에 느와르 장르의 전체와 정수를 가득 담아 놓았거든. 


스포 친구들!


진짜 스콜세지는 미쳤다. 주인공이 자기 어린 시절부터 오프닝 시점까지 돌아오는 동안 내레이션을 직접 때리는데, 그게 장장 한 시간이나 되는데 하나도 안 지루함. 영화 전공하고 공부하면서 내내 들었던 소리가, 내레이션 함부로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영화는 시각 매체니까, 상황이나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는 데에 내레이션처럼 청각적 요소를 사용하면 촌스러운 거라고. 그러나 일단 <좋은 친구들>은 장장 몇 십년 동안의 주인공 일대기를 다 담아내야 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빠른 묘사로써 사용할 수 있는 내레이션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콜세지가 그 내레이션을 애초부터 촌스럽게 안 썼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구장창 쓴 것도 아니요, 때문에 오히려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관객들에게 있어 일종의 하이라이트 밑줄선처럼 작용해버림.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꼭 알아야한다!- 싶은 부분이나 요소에 내레이션이 들어가 있어 이야기 따라가기가 썩 쉽다. 게다가 그 화룡점정으로, 막판에는 내레이션의 화자였던 주인공이 카메라 렌즈를 똑바로 마주해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동기화 해버린다. 존나 이렇게 끝내버리니 촌스럽다 뭐다해도 스콜세지의 내레이션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내레이션 등의 연출 뿐만 아니라 촬영적 요소도 기가 막힌 영화다. 주인공 커플이 차에서 내려 거리를 지나 식당 뒷문을 통해 부엌을 거쳐 홀까지 이동하는 진짜 아름다운 롱테이크 쇼트. 그 자체로 심미적이지만, 허영과 세속에 찌들었으면서도 그를 즐기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끊지 않고 보여주며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매번 말하는 것이지만, 무조건 길게 찍은 롱테이크라고 또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닌 것이다.

주제적으로는 마틴 스콜세지의 다른 느와르 영화들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마피아나 갱스터를 주인공으로 했던 지금까지의 수많은 느와르 영화들이 다 그러지 않았나. 폭력은 낭만화 되고, 범죄는 모험화 되며, 악당은 영웅화 된다. 이역만리의 아주 먼 친척이라고 할 수 있을 한국의 조폭 코미디들도 다 그랬잖아. 주인공이랍시고 조직 폭력배들을 일종의 정의로운 영웅으로 그렸던 전통이 사실 아직까지도 남아있지 않은가. 그러나 마틴 스콜세지는, "갱들 사이에 의리와 낭만이 어디있어?"라는 일관된 태도로 영화를 그린다. 어떻게 보면 마이클 만 감독과 정반대의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볼 수도 있겠네. 하여튼 <좋은 친구들> 스콜세지의 그러한 태도가 적잖이 드러나는 영화다. 특히 주인공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인 '캐런'의 시점도 그녀의 내레이션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이 연출적으로 흥미로운데, 아마 주변인이지만 본격 갱스터는 아닌 제 3의 인물을 통해 갱스터인 주인공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때 그 바깥 양반들의 이야기. 강도질과 살인을 직업으로 삼았던 남자들. 그리고 서로를 좋은 친구들이라 불렀으면서도, 결국엔 지들 뒷통수 신나게 후려갈기다가들 동반 몰락. 스콜세지의 뒷골목 세계는 언제나 비열하고 치졸해서 현실성 있다.

주인공 '헨리'의 마지막이 재미있다. 어쨌거나 그는 살아남았다. 그동안 돈도 훔쳤고, 마약도 팔았으며, 심지어는 사람도 죽였던 그다. 화룡점정으로는, 결국 친구들까지 배신하게 된 셈이 아닌가. 나쁜 놈이지. 그러나 어쨌거나 그는 살아남았다. 그럼 다행이잖아. 그럼 된거잖아. 하지만 헨리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여기던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자신이 남은 평생 살아야된다-라는 말 자체가 벌처럼 느껴졌나 보다. 살아 남았지만 이게 사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나 보다. 끝까지 살아남은 그가 자신이 살고 있는 평범한 집의 평범한 문을 닫을 때, 그 곳에서는 기어코 쇠창살 닫는 소리가 난다. 평범한 삶을 감옥처럼 영위하는 남자. 과거 휘둘렀던 폭력에 결국 현재를 저당잡혀버린 남자들. 스콜세지에게 갱스터들이란 그런 치들이다.

이쯤되면, 마틴 스콜세지는 영화의 신이 느와르 장르에 내려준 검고 검고 또 검은, 아주 까맣다 못해 시꺼먼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핑백

  • DID U MISS ME ? : 택스 콜렉터 2020-11-19 13:46:15 #

    ... 틴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영화구나-라는.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나. 범죄자들은 미화되지 않고, 오직 비열하고 또 비열한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나. 그리고 대개 그들의 최후는 허무하면서도 비참하지 않나. &lt;택스 콜렉터&gt;가 딱 그렇다. 주인공이 뭔가 할 것 같았는데 죽어버린 ... more

덧글

  • 2020/08/25 19:2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20/09/04 13:3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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