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4 16:49

커피 & 카림 극장전 (신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그리고 내가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혐오스러운 영화.


스포 & 스포!


자, 설계도를 한 번 보자고. 주인공은 백인 성인 남성과 흑인 소년이다. 남자는 무능하고 찌질한 경찰이고, 이혼녀인 여자친구의 아들이 바로 그 소년이다. 모종의 사건으로 둘이 엮이게 되어 부패 경찰과 갱들로부터 쫓기게 된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버디 무비인데, 하필 버디로 묶인 두 양반이 훗날 가족이 될지도 몰라 사이가 다소 어색하고 땐땐한 사이라는 것.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코미디 뽑아먹기에도 좋고, 액션 양념치기에도 좋다. 내용과 설정 자체는 꽤 검증된 설계도라는 말이다.

근데 영화 속에서 남발되는 '혐오' 발언과 그에 관한 순간들이 영화를 망친다. 심지어 그 영화를 보는 내 기분까지 잡치게 만든다. 혐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그 단어 관련해서 사람들이 요즘 가장 먼저 떠올릴 후속 단어는 아마 '인종'과 '성별'이겠지.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갖고 있는 PC 요소는 나쁘지 않다. 항상 말했듯, PC 요소도 과하지만 않으면 용납된다. 주인공 중 한 명이 흑인 소년인 것,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과 사귄다는 것, 여성이 때로는 남성보다 더 강하거나 더 사악할 수도 있다는 것 등등. 캐스팅과 그 배역 관련해서 발현된 PC 요소는 그럭저럭 눈 감고 넘어가 줄 수 있는 수준인 것이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다 병신 같다. 1차적으로, 나는 인종이나 성별 관련해서 별다른 혐오가 없는 사람이다. 물론 실제로 혐오가 있다 하더라도 대놓고 "난 혐오꾼이야!"라고 하지는 않겠지. 그러나 진짜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로 그런 혐오의 감정을 잘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이 말이야.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근데 씨팔, 이 이상한 영화가 내 안의 혐오를 만든다. PC 요소를 위해 이렇게 다인종 캐스팅을 했으면 그걸 써먹어야지. 혐오와 편견, 선입견을 깨는 데에 써먹고 코미디로 그걸 강조해줬어야지! 그러나 영화는 내게 없던 혐오를 노골적으로 만들겠다 작정이라도 한 것인지 미쳐 날뛴다.

뚱뚱한 흑인 소년으로 설정된 주인공은 학교에서 동양인 여성 선생님과 백인 남성 선생님을 둘 다 개무시하며, 자신의 엄마와 사귀는 백인 아저씨를 어색해하거나 미워하는 걸 넘어서 청부살인 비슷한 걸 통해 골로 보내려 한다. 물론 진짜 죽일 생각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청부대금까지 들고 깡패들 찾아간 건 맞잖아?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말도 안 되는 짜증과 생떼를 쓰며 관객들의 혼을 빼놓는다. 이러다가는 뚱뚱한 흑인 소년들에게 없던 혐오도 생길 판국이다.

소심한 백인 경찰로 설정된 또다른 주인공은 다 잡아 수갑까지 채워 체포한 용의자를 눈 앞에서 놓칠 정도로 무능하다. 일터와 집 모든 곳에서 무시받기 일쑤고, 그래도 멍청해서 그렇지 사람은 착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쯤 다른 주인공들이 내내 이 남자를 갈궈댄다. 동정해주기엔 너무 무능하고 쓸모없는 놈인 거다, 이 놈은. 이러다가는 백인 경찰에게 없던 혐오도 생길 판국이다. 보다보면 여성 경찰과 흑인 경찰에게도 혐오 생기게끔 반전 심어놨다는 게 함정 이러면 공평한 건가? 다 죽자는 거지 뭘

여기에 그 흑인 소년의 엄마이자 그 백인 경찰의 여자친구로 설정된 흑인 여성이 있다. 이 여자는 아들 말이든 남자친구 말이든 다 안 듣고 내내 자기 할 말만 언성 높여서 한다. 진짜 중요한 말을 들어야 하는 건 정작 본인 임에도 자기 보다 상대가 목소리를 키우면 눈깔을 뒤집는다. 이후 더 위급한 상황이 찾아왔을 때도 남자친구의 말을 들어주기는 커녕 이상한 오해를 꼬투리 잡아 모든 상황을 파토내려 한다. 그래도 이 여자는 유능하다

영화가 이런 식으로 내게 없던 혐오마저 스스로 먼저 마구 만들어낸다. 보다보면 남성과 여성, 성인과 청소년, 경찰과 깡패,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다 혐오성 표현을 투척하고 있음. 근데 그렇다고 해서 그걸 썩 괜찮은 유머나 코미디로 포장한 것도 아냐. 영화 보는내내 단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었다. 액션도 죄다 거지 같고. 다른 거 다 떠나서 일단 장르 영화로써 그 기본값을 못해줬다면 거기서부터 이미 망한 거 아니냐?

주인공 콤비가 갱들의 마약 공장에 침투하는 시퀀스는 그 자체로 어이가 털릴 지경이다. 무능한 백인 경찰과 흑인 소년이 그냥 어그로 끄는 것 하나만으로 모든 악당들을 일망타진. 설정과 메시지는 현실에 딱 발 붙이고 있는 걸로 잡아놨으면서, 어째 그 묘사는 다 판타지인 거냐. 정말 보는내내 어이가 없는 영화였다. 더 쓸 말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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