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24 21:06

로스트 랜드 - 공룡왕국, 2009 대여점 (구작)


코미디는 멜로 드라마와 더불어 비교적 제작비가 싼 편에 속하는 장르다. 대개의 코미디가 배우의 개인기 또는 캐릭터 간의 관계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화려한 배경이나 스펙터클한 CGI를 많이 쓸 필요가 없는 것. 그런데도 이 영화는 끝까지 간다. 시간 여행과 평행 우주라는 설정을 끌어들여 기어코 윌 패럴을 공룡의 시대로 던져놓고야 만다. 거대 공룡과 도마뱀 외계인들이 바글 거리는 세상. 늘어났을 게 불 보듯 뻔한 예산. 그러나 영화는 그에 집중하느라 정작 해야만 하는 것을 못해낸 모양새다.

최근 들어 유독 코미디 영화들을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코미디야말로 정말 만들기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남을 웃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냔 말이다. 그게 고품격 블랙 코미디든 저질 화장실 코미디든 간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웃게 만드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로스트 랜드> 역시 할 거면 그 쪽에다 올인 투자를 했었어야만 했다. 왜 굳이 공룡에 외계인까지 끌어들이면서 제작비를 늘렸던 거야. 정작 제대로 웃기지도 못하고 있고만.

윌 패럴은 괜찮은 희극 배우고, 이번 영화에서도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캐릭터가 너무 뻔하다. 그 자체로도 뻔하지만 윌 패럴로서도 뻔하다. 이 캐릭터가 앞으로 대충 어떻게 되겠구나, 그리고 그걸 윌 패럴이 이런 식으로 연기하게 되겠구나. 모든 것들이 예측되고 그대로 실행된다. 다른 장르면 몰라도 코미디는 그러면 안 된다. 관객들과 가장 많은 수 싸움을 해야하는 장르가 코미디다. 슬랩스틱이든 대사든 대부분의 코미디는 다 타이밍에서 결정되니까. 근데 이 영화는 그 점에서 처절하게 실패한다.

일평생 무시받던 찌질한 과학자가 한 여대생의 응원을 듣고 단 하룻밤만에 타임머신을 발명 했다거나, 주인공의 말귀를 알아듣고 끝까지 복수하러 오는 티라노사우르스의 모습, 여기에 뜬금없이 등장해 지구를 정복하려드는 외계세력의 하릴없는 추락 등. 코미디임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개연성과 현실성 모두 없는 장면들이 속출. 특히 도마뱀 외계인 존나 웃기던데. 여차하면 지구 정복해버리겠다!-라고 외치는 것 치고는 민간인 여대생의 발차기 한 방에도 나가 떨어지잖아. 겨우 이 정도 바디 스펙으로 대체 어찌 지구를 정복하겠다는 건가. 침공 하자마자 미군 전투기 편대 뜨면 다 개작살 날 것 같던데.

그냥 감독이나 작가가 상황에 따라 보고 싶은 장면들 마구 떠올린 다음에 그거 위주로만 이야기 짜내 억지로 이어붙여 만든 영화 같다. 주인공과 티라노사우르스의 일기토라든지 바로 직후에 또 둘이 친해져서 마구 외계인들을 학살한다든지. 존나 보는내내 어이가 털려서 병맛 근처에도 못 가보고 추락하는 것들이 너무 많음. 이 영화 보겠다고 새벽 4시까지 깨어있던 내가 한심하네, 씨발


덧글

  • 로그온 2020/09/08 18:57 # 답글

    이 영화를 본건 아니지만 줄거리 보다보니 80년대 막장 코미디 느낌이 나는 군요. 재밌어 보이겠다 싶은 소재 다 집어넣고 의식의 흐름대로 전개시킨 작품 말입니다 (...)

    그나저나 리뷰를 읽다보니, 윌 페럴이 나오는 영화 거의 대부분이 너무 윌 페럴스럽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생각해보니 영화마다 '윌 페럴 식 리액션' 같은 게 하나씩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나마 변주가 있었다면 [스트레인저 댄 픽션] 정도...
  • CINEKOON 2020/09/22 20:38 #

    <스트레인저 댄 픽션> 정말 좋은 영화죠. 그러나 말씀하신 대로 그 외 영화들 속 윌 패럴의 모습은 다 비슷비슷... 하나의 거대한 윌 패럴 유니버스인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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