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9 15:46

아이 엠 러브, 2009 대여점 (구작)


현대적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로 팀 버튼이 존재한다면, 현대적 인상주의 영화의 대가로는 루카 구아다니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루카 구아다니노의 영화들은 항상 빛의 명멸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해내고 있지 않던가. <아이 엠 러브>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항상 다뤄왔던 계절인 여름을 통해 벌레가 많고 습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아름답고 바삭바삭하게 빛나고 또 그로인해 한 뼘 더 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아이 엠 러브>에도 역시 존재한다.

사실 마냥 깔끔한 영화로, 또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빛났던 영화로. 이렇게만 이 영화를 기억하기가 쉽지만, 생각보다 연출이 알찬 영화이기도 하다. 인상주의에 표현주의를 접목해 주인공 '엠마'가 느끼는 잠깐의 황홀경을 빛을 통하여 표현해낸다든가, 일종의 불륜 상황 속에 처해 배덕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모습을 누군가가 훔쳐보고 있는 것만 같은 관음증적 연출로 강조해낸다든가. 배우들의 호연과 더불어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력 덕택에 영화가 많이 상승효과를 본 것도 있다.

엠마는 시종일관 닫힌 문 앞에 선다. 그가 시집 온 명문가의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들끓고 모든 공간들이 닫힌 문과 창으로 구분되어져 있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한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는 어떠한가. 사랑은 열린 문틈으로 온다. 그녀는 열려있는 '안토니오'의 부엌 문을 통해 사랑의 환상을 머릿속에 각인한다. 사람이라곤 없는, 오직 나무와 풀벌레들만이 가득한 개활지에서 그녀는 안토니오와 사랑을 나눈다. 그렇게 항상 닫힌 문 뒤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던 여자는 넓고 뚫린, 말그대로 열린 공간을 향해 달음박질 친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에게 스스로의 불륜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녀는 멍한 채 닫힌 문 앞에 서 있다. 또 다시. 과연 내가 이 닫힌 문을 앞으로의 평생 동안 버티고 살 수 있을 것인가. 저 닫힌 창문과 또다른 닫힌 창문 사이를 바쁘게 오가며 탈출을 꿈꾸는 저 비둘기처럼 평생을 갇힐 수 있을 것인가. 위아래가 뚫린 전등이라면 당신이 나방이라 하더라도 금세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굳게 닫힌 창문 앞에서라면 당신이 새일지언정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때문에 결국, 엠마는 선택을 한다. 남편을 뒤에 두고, 시어머니를 뒤에 두고, 하녀를 뒤에 두고 앞을 향해 뛰어나간다. 레즈비언으로서 인정 받을 수 없는 사랑을 꿈꾸었던 자신의 딸과 눈빛을 통해 유일하게 소통하는 순간. 딱 그 순간 하나만을 공유하고 이후로는 그저 달려나갈 뿐이다. 결말부에 이르러 사랑을 찾아 달려나간다-라는 이미지 때문에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기수라고 볼 수 있었던 <졸업>과도 비슷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이 엠 러브>는 <졸업>과는 다른 스탠스를 취한다. <졸업>의 결말은 짐짓 아름답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이내 현실에 굴복하는 어떤 것이었다. 신나게 도망쳐와 놓고도, <졸업>의 두 남녀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한채 사랑이 짜게 식는 얼굴로 일관하며 영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아이 엠 러브>는, 도망친 이후의 엠마 표정을 담아내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도망친 새장의 열린 문 만을 가만히 주시할 뿐. 그렇다. 사랑이 피어오를 자리에 현실이 끼어들 자리 따윈 없다. 여기에 엠마 아니, '카리쉬'의 표정을 담아낸 쇼트 따위는 없다. 그녀는 그저 사랑으로 달음박질 할 뿐이다. 그래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는 또 달라. 그 영화는 사랑과 그리움을 그저 꾹꾹 눌러 참아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던 주인공의 슬픈 표정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아니었나. 바로 그 점에서, <아이 엠 러브>는 같은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과도 구분된다.

이토록 좋은 연출과, 좋은 연기가 있는 영화임에도 물론 아쉬움은 있다. 연출이 좋은 것에 비해 각본이 그리 세련되지는 못한 것 같다는 것. 결국 이것도 흔하디 흔한 치정극일 뿐이지 않은가- 싶은 것. 아마 여기에 각본까지 좋았더라면 더 할 말이 없었을 텐데. 하여튼 그럼에도 <아이 엠 러브>는 의미있는 영화다. 그 자체로 강렬한 사랑의 순간을 목도하게끔 만들어주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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