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4 14:30

그레이하운드 극장전 (신작)


극장 개봉하려다가 코로나 19 때문에 급하게 애플tv 플러스로 선회하게 된 비운의 영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한 규모 있는 전쟁 영화인데다 주연배우는 무려 톰 행크스. 제작사는 소니. 그런데도 극장에서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참 안타깝다. 왜나하면, 영화가 정말 좋더라고.

영화는 대서양을 배경으로 한다. 뱃길을 통해 영국으로 병력과 물자를 수송해야만 했던 미국. 근데 수송선단만 보내면 당시 대서양을 주름잡던 독일의 잠수함 U보트 부대가 시밤쾅을 쏴대니 걔네만 그냥 보낼 수는 없었던 거다. 때문에 수송선단에는 그들을 호위할 해군 소속 호위함이 붙고, 하늘에선 폭격기로 공중 지원을 해준다. 그러나 대서양이 애들 풀장도 아니고 좀 넓은 바다인가? 북미에서 유럽까지 가는내내 공중 지원을 붙일 수는 없는 법. 때문에 필연적으로 공중 지원을 쓸 수 없는 구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딱 이 구간을 배경으로 한다. 도와줄 이는 없고, 지켜야할 이만 존재하는 차갑고도 고독한 전장. 우리의 주인공 ‘어니스트 크라우스’가 처하게 된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이다.

지적인 전쟁 영화라고 할 만하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수송선단을 파괴하려는 적국 잠수함과 그를 막으려는 호위함의 대결을 다뤘다. 잠수함 대 잠수함의 싸움도 아니고, 선박 대 잠수함이다. 그러다보니 주인공 호위함 입장에서는 수면 아래에서 상대를 보지 못한채 오직 레이더와 계산, 그리고 육감만으로 적을 상대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게 썩 지적이다. 일반적인 육지 전투를 다루는 전쟁 영화들에서는 아무래도 돌격의 이미지가 중요하고 또 강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혈투와 목숨을 건 생존의 양상을 띈다. 물론 육군에게도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이 있겠지. 근데 일단 영화 내에서의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다. 어쨌거나 <그레이하운드>는 그 점에서 체스나 장기를 지켜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알맞게 고증된 호위함 내부 모습을 보는 맛도 있지만, 일사분란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이행되는 전략 전술의 풍미가 더욱 더 강한 영화인 것,

날씨와 그에 따른 온도, 낮과 밤의 차이 등을 이용해서 상대를 타격해야한다는 점도 썩 매력있다. 게다가 영화가 꽤 디테일하기까지 하다. 자막을 통해 그 날 그 날 주인공이 싸워나가야하는 상황과 설정들을 관객들에게 내내 보고해준다. 흡사 당직사령이 꼼꼼히 작성한 군부대 보고서를 읽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다. 

언제나 말했지만 좋은 전쟁 영화는 항상 반전 영화이고, 스펙터클을 앞세우면서도 항상 그 중심엔 인간을 놓는다. <그레이하운드>는 주인공 어니스트를 통해 전쟁 영화로써의 딜레마를 제시한다. 여기서 무엇보다 강조되는 것은 리더의 고충이다. 매번마다 옳은 판단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나 최선의 판단을 통해 최고의 결과물을 내야한다. 그러면서도 결정과 지시는 신속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리더란 그런 것이다. 모든 보고와 모든 결정을 다 처리해야하는 리더의 부담감. 영화는 그걸 수많은 부하들에게 둘러싸여 모든 결정을 평가받아야하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잘 보여준다. 애초 공간적 배경이 넓은 개활지가 아니라 좁은 함내이다보니, 끊임없이 주인공과 그 밑의 부하들이 어깨를 부딪히게 된다. 한 프레임 내에 항상 주인공을 지켜보는 다른 인물들의 시선을 겹쳐넣으며 리더로서 주인공이 받았을 심적인 부담감이 잘 묘사된다. 

또다른 딜레마도 있다. 어니스트는 시종일관 성경을 인용하는 종교인이다. 그러다보니 이를 통한 내적 딜레마도 존재하지. 적함을 파괴하는 전과를 세웠음에도 누군가를 죽였다는 생각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고 수심에 잠기는 인물의 모습을 톰 행크스의 얼굴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생존자들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공격받기 직전의 다른 보급선을 보호하러 갈 것인지 등의 묘사도 있음. 전쟁 영화로써의 딜레마도 짧지만 충분히 풍부하게 잘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레이하운드’라는 단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날씬하고 빠른 이미지의 견종이다. 실제로 영화는 늑대들로부터 양떼를 지켜야하는 양치기 개의 모습으로 주인공의 상황을 곧잘 은유한다. 주인공이 탄 호위함 그레이하운드는, 양치기 개로써 흡사 양떼와도 같은 보급선단을 U보트 늑대무리로부터 지켜야만 한다. 양치기 개를 항상 똑똑한 견종으로 고르는 데엔 이유가 있다. 임무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떠나서, 늑대를 어떻게 견제할 것인지와 이미 상처 입은 양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다른 양들의 보안에 헛점을 드리울 것인지 등을 매 순간 판단해야하기 때문에. 바로 그 점에서 <그레이하운드>는 지적인 동시에 풍부한 인간미까지 구사하는, 썩 잘 만든 전쟁 영화다.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게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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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t;그레이하운드&gt;</a> (애런 슈나이더) 전쟁 영화는 보통 그 규모의 스펙터클만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바로 그 점에서 &lt;그레이하운드&gt;는 특별하다. 물론 광활한 대서양을 배경으로 삼아 여러 전투함들과 잠수함들이 엉겨붙는 액션의 규모 역시 크고 멋진 영화다. 그러나 &lt;그레이하운드&gt;의 진가는 다른 데서 드러난다. 이 영화는 철두철미한 성격의 당직사관이 꼼꼼히 작성한 보고서를 읽는 듯한 기분을 내게 전달해줬다. 화면을 가득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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