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도면 캐스팅은 특 A급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차세대 연기파 제시카 차스테인에 젊은 또라이 연기의 본좌 콜린 파렐, 늙은 또라이 연기의 본좌 존 말보비치, 게다가 <존 윅 2>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커먼까지. 아, 짧지만 이안 그루퍼드도 나옴. 하여튼 캐스팅은 꽤 대단한 편. 근데 어째 영화의 퀄리티는 이 좋은 배우들이 모두 제작사에 큰 사채 빚이라도 떠안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빚까기 용도로 출연했던 것인가 싶을 정도로 형편없음.
다른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장르 영화들은 딱 두 가지만 지켜주면 좋겠다. 심지어 둘 다 지킬 필요도 없다. 둘 다 지키면 제일 좋겠지만, 형편이 어려우면 그 중 하나만이라도 사수하라는 거다. 첫번째는 장르적인 재미가 있을 것. 두번째는 장르 내에서 새로움이 있을 것. 근데 이 영화는 둘 중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나 보다.
첫번째 규칙. 장르적인 재미가 있을 것. 이 영화는 액션 영화다. 그럼 액션 묘사에 있어서 기본적인 재미를 제공해줬어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단 액션의 물리적인 분량이 그리 많지가 않다. 다시 떠올려 봐도 액션 장면이라고 할 만한 것은 기껏해야 작은 규모로 대여섯개 정도. 근데 그게 다 밍숭맹숭한 합의 대인 액션들로 구성되어 있고, 그마저도 연출이나 촬영이 제대로 뒷받침 해주질 못한다. 액션 내에서 말이 안 되는 장면도 많다. 주인공 ‘에이바’가 특수부대 하나를 털어먹는 장면은 밀리터리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현실감 없던데. 하여튼 이 외의 액션 장면들도 다 문제인데, 클럽 겸 도박장에서 벌어지는 액션도 카메라가 죄다 멀리서 찍어놨거나 박진감 없이 찍어놨다. 그래서 액션 영화로써의 쾌감을 느끼기가 무척이나 어려움.
첩보 액션 영화임에도 주인공으로 여성을 앞세웠다는 점은 특기할만하고, 또 영화가 그걸 잘 이용해먹고 싶었구나 싶다. 사건 현장 한 가운데에 있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선입견을 출중하게 활용해 현장을 벗어난다든가, 여성임을 오히려 강조하여 타겟이 긴장을 풀게한다든가 등. 그러나 연출이 밋밋해버리니 그 모든 게 다 잘 살지를 않는다. 이런 건 이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앤 헤서웨이가 너무 잘해놨잖아. 그 큰 이목구비로 가해자로서 비열한 표정을 짓다 일순간 일방적인 피해자 코스프레 해버리는 부분 같은 거. 그거에 비하면 이번 영화 속 제시카 차스테인이 너무 맹탕이야.
두번째 규칙. 장르 내에서 새로움을 찾을 것. 개뿔. 영화는 결국 또 ‘조직에 배신당한 조직원’의 이야기로 빠진다. 이제 이런 로그라인의 영화는 다 집합시켜 연병장 두바퀴도 채울 수 있을 것 같네. 그래, 여기까진 잘 먹히는 클리셰니까 어쩔 수 없이 썼다 치자고. 근데 그 세부 요소들도 죄다 기시감이 쩐다. 주인공의 유사 아버지로서 기능하는 늙은 멘토 캐릭터의 존재와 그의 최후. 부릴 수족들이 이미 차고 넘치는 데도 굳이 직접 주인공 처단하려고 나서는 또라이 기질의 조직 간부. 여기에 액션이 벌어지는 장소들도 죄다... 호텔이나 클럽. 특히 클럽은 장면 시작되자마자 ‘또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도대체가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향락 쩌는 클럽은 안 나오지를 않네. <테이큰>, <아저씨>, <지옥에서 온 전언>, <존 윅> 등등.
이것 역시 뭔가를 첨가해보려고 했던 것 같긴 하다. 주인공과 그 가족들 사이의 관계. 마치 <플라이트>에서 봤던 것 같은 주인공의 알콜중독 설정. 그러나 다 깨작깨작 건드리거나 그 자체로 별 효용성이 없어뵌다. 이렇게 얄팍한 싸구려 상술의 영화는 또 오랜만이다. 그것도 이 캐스팅으로 말이야.
그나마 이 영화에 미덕이 있다면 존 말코비치의 노익장이 빛나는 액션 연기? 그리고 <롱키스 굿나잇>의 히어로 지나 데이비스를 오랜만에 다시 본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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