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변으로 상륙해 고지를 점령해야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식의 돌격형 영화도 아니고,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해변에서 집으로 가야하는 <덩케르크>식의 철수형 영화도 아니다. <아웃포스트>는 단순히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영화로 정의되지 않는다. '전초기지'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영화답게, <아웃포스트>는 전투가 곧 생활이 되어 지금 내가 공격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공격을 당하고 있는 건지 조차 혼란스럽게 여기는 군인들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전투를 소재로 한 실화 베이스의 영화이고, 또 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이다보니 아무래도 탈레반 등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있어서 다소 편향된 시점을 가진 영화인 것이 사실이다. 이거야 뭐 어쩔 수 없다고 보고. 그러면서도 영화는 미국 정부의 스탠스와 군 간부들의 모습까지도 전방위적으로 비판한다. 항상 말해왔듯, 좋은 전쟁 영화는 좋은 반전 영화여야 한다. <아웃포스트>는 그 점에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종종 미국적 애국심을 고취하는 장면들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영화의 국적을 떠올려보면 새삼스러운 꼬투리 잡기란 생각이 들고, 장렬하고 영웅적으로 명예롭게 죽기는 커녕 어이없는 실수의 연발들로 죽어나가거나 일선에서 도망쳐나가는 군 간부들의 모습을 통해 내부적 비판 마저도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군필 남자들이라면 군 생활하는 동안 한 번쯤은 그런 말 들어보지 않았던가. 우리의 주적은 간부라고.
군 간부를 비롯한 정부는 최전방에서 벌어지는 일을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말도 안 되는 자살 돌격 미션을 상명하복이라는 그럴 듯한 말로 포장해 결국 이행 하고야 마는, 그리고 끝내는 정말로 실패 하고야 마는 한심한 모습에 혀를 끌끌 차게도 된다. 제일 웃긴 건 올랜도 블룸이었음. 캐스팅도 무려 올랜도 블룸인데 부하들을 지키려다 죽거나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영웅적 모습으로 산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트럭 운전하다가 절벽에서 굴러 떨어져 사망. 이런 부분들에선 마틴 스콜세지나 코엔 형제의 지독한 현실주의적 감각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왠지 모르게 혀끝이 아릿하기만 했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결말을 통해 총성이 일상화되는 순간을 잘 포착해냈었다. <아웃포스트>도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방이 위험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전초지기에서의 고립된 삶은 전투가 곧 생활이다. 기존의 전쟁 영화들은 모든 전투가 다 무겁고 중요하게만 느껴졌었다. 총알 한 발 한 발에 나라와 세계의 안녕이 담겨있는 듯한 비장함이 깃들어있었다. 그러나 <아웃포스트>는 이를 굉장히 미니멀하게 다룬다.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하고 있다가도 탈레반의 총알이 날아오면 그냥 내 총 잡고 쏴제껴야 하는 것이다. 웃통 벗고 운동하다가, 전우들이랑 춤추고 수다 떨다가도 총알이 빗발치면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응사 해야하는 것이다. 그게 전초기지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매 순간의 불안함을 영화가 또 잘 잡아내고 있다.
스콧 이스트우드는 아버지 따라 멋지게 나오고, 다른 배우들도 다 좋다. 그러나 케일럽 랜드리 존스 이야기만은 해야할 것 같다. 물론 그가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대단한 연기를 이 영화에서 펼쳐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요 몇 년 사이 그는 유독 좋은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오지 않았던가. 어찌보면 그저 양산형 전쟁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법한 시나리오였을 텐데, 유독 작품 고르는 눈이 좋은 것 같다. 침 졸라 튀기며 들것 들고 뛰어가던 모습이 이상하게 잘 안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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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ㄱ 2020/10/06 21:59 # 삭제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