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6 13:42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극장전 (신작)


<시실리 2km>와 <차우> 등의 영화로 작가주의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줬던 신정원 감독의 신작. 그것도 8년만의 신작. 근데 되는대로 막 갖다붙이는 게 신정원의 작가주의라면 나는 글쎄.

일단 미덕부터. 21세기 유튜브 감성이 짙게 베인 영화라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편집과 음향 편집 등을 비롯한 연출 스타일이 지극히 유튜브스럽다. 요즘 유튜브에서 많이 쓰이는 <모래시계> OST를 가져다가 적극적으로 써먹는다거나, 시퀀스 별로 개그 프로그램의 한 꼭지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특히 <완벽한 타인> 이후 상황 코미디로써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영화였다는 점에서 좀 더 점수를 줄 수도. 물론 그 상황 코미디라는 것을 <완벽한 타인>만큼 잘 해냈냐-라고 하면 그것도 나는 글쎄.

이제부터는 그냥 깔 것들. 미덕이라고 포장하긴 했었지만 각 시퀀스 별로 다른 코너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게 마냥 괜찮기만 한 느낌은 아니다. 그건 영화가 전체적으로 통일성 없다는 말이랑 똑같은 거거든. 말그대로 영화에 통일성이라는 게 없다. 오프닝 도입주는 본격 SF처럼 시작했으나 여기에 코미디와 치정극이 들어오고 이후로는 미스테리와 호러, 상황 코미디, 심지어는 막판에 수퍼히어로 장르의 테이스트까지 그냥 삼선짬뽕 된다. 뭐 하나 통일성 있는 전개가 없고, 그렇다고해서 그 각자의 매력을 다 잘 살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냥 이래저래 방만하고 산만한 영화일 뿐인 것.

이야기의 흐름도 왔다 갔다고, 장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영화 내의 장르적 규칙들이 하나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다. 남편의 외계인 친구들은 왜 집 안에 들어가 쓰러져있었던 것이며, 이후에는 왜 다시 깨어나게 되었는지. 그 행동들에 무언가 그들이 의도한 이유가 있었던 건지 등이 하나도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영화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데, 관객으로서는 그게 심히 당황스럽다. 아직 이삿짐 다 싣지도 않았는데 트럭 혼자 급하다고 쌩하니 가버리는 느낌.

코미디로써 관객들에게 타이밍을 빼앗기는 순간들도 여럿 있다. 이는 치명적이다. 코미디 하는데 한 수 앞을 다 읽힌다는 건 엄청난 약점이지. 시체를 장롱도 아니고 스타일러 안에 숨기길래 좀 뻔하더라도 그걸로 개그 뭐 하나 만들려나 보다- 싶었었는데 AI 스피커 통해서 어줍잖은 서스펜스 만드는 데에만 쓴다. 스타일러 안에 갇힌 양동근으로 뭔가 더 뽑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시도조차 안 하는 것에 가깝고. 이럴 거면 대체 뭣하러 거기다 집어넣은 거냐고.

영화가 중구난방에 애드립으로 막 갖다붙인 모양새. 누군가는 정신 놓고 봐야하는 영화라고 하겠지만 정신 놓고 보려면 일단 영화가 그 자체로 좀 웃겨야할 것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웃지 못한 영화라 즐기지도 못했고 정신을 놓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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