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디오 게임에 빠져있던 소년이 화면 밖으로 나온 게임 캐릭터들에 의해 성장하고 또 그로인해 종국에는 지구의 평화까지 지켜낸다는 이야기. 전개는 많이 다르지만 아무래도 소재가 소재이다 보니 스필버그의 <레디 플레이어 원>을 자꾸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영화가 비벼보기에 <레디 플레이어 원>은 넘사벽의 영화이지만 말이다.
영화라는 매체에서 '기술력'이 가지는 의의와 그 위치를 간단하게나마 언급해야할 것만 같다. 대부분의 예술이 그렇듯, 항상 중요한 건 이야기와 그 내용이다. 기술력은 그 다음의 문제지. 이야기가 흥미롭고 충분히 재미있다면 영화가 흑백으로 찍혔든, 무성으로 찍혔든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심지어 특수효과나 CG효과가 좀 구리다하더라도 참고볼만한 여지 역시 있을 거야. 그만큼 영화라는 매체에서 '이야기'가 갖는 힘은 큰 것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얘기를 하고 싶다. 물론 이야기 중요하지. 그러나 기술력 역시 간과 해선 안 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영화가 심어줄 수 있는 이미지, 그러니까 첫 인상이라는 것은 대개 기술력에서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고로 기술력 하나만 믿고 돌진하는 영화들도 생긴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들 대부분이 다 그런 식이지. 물론 <터미네이터2>나 <아바타>의 이야기가 허접하다는 소린 아니다. 단순하고 전형적일지언정, 그 영화들의 이야기는 자체적으로 완결성이 있고 또 힘이 넘친다. 그럼에도 'T-1000'이나 나비족 외계인들을 그런 수준으로 묘사하지 못했었다면 영화는 필히 실패했을 것이다. 앞서 말했잖아, 툭 까놓고 말해보자고. <터미네이터2>와 <아바타>는 훌륭한 이야기를 갖추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그 영화들의 첫 인상은 모두 기술력에 결판난다.
그러니까 <피어리스>도 마찬가지다. 애니메이션이야말로 그 기술력의 인상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매체다. 그게 아니라면 왜 그 수많은 애니메이션 감독들과 애니메이터들이 그놈의 작화에 집착하는 건데? 좋은 이야기만 있다면 만사형통이라고? 그럴 거면 왜 픽사의 그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제이크 설리'와 '레미'의 수많은 털들을 구현해내는데에 열과 성을 다 쏟는 거냐고. 실사 영화에 비해 애니메이션에서 느껴지는 기술력의 격차는 훨씬 더 크다. 막말로 디즈니의 극장 개봉용 애니메이션들과 TV 시리즈용이 되는 그 속편들 사이의 기술적 간극 역시 꽤 크잖아.
<피어리스>는 바로 그 점에서 형편없다. 캐릭터의 디자인과 모델링은 물론이고 그들이 생활하고 또 가로지르는 주위 환경들이 너무 허접하다. 그러다보니 결국 이 인물들이 진정으로 살아숨쉰다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어린이용 타겟이니까 괜찮지 않느냐고? 그 말은 너무 모욕적이다. 애니메이터들부터가 스스로 자신들 작품을 격하시킬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물론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들의 성인의 그것에 비해 수준이 낮다는 게 아니다. 무슨 일이든 극에 달하면 그게 곧 예술이 된다. 그러니까 타겟이 어린이들이든 성인들이든 상관없이 그 안에서 최대한의 것을 뽑아내려고 노력 했어야지. 예산의 문제가 있었다면 훨씬 더 소극으로 이끌어가면 되는 거고.
영화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기술력에 있어서 실패하니, 결국 믿을 건 이야기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 역시 별로 믿을 게 못 된다. 그 자체로 너무 뻔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린 아기들을 주 소재로 내세웠으면서도 피상적으로 밖에 다루질 못한다. 마지막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거대 괴수와 수퍼히어로 장르를 뒤섞으려는 시도인가-싶긴 한데 그 자체로 너무 밍밍하고. 게다가 이 모든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이 성장해나간다는 이야기도 너무 뻔하고 재미없음.
결과론적으로는 이걸로나 저걸로나 다 실패한 모양새다. 보는내내 지루해 죽는 줄 알았다. 아동 영화라는 비겁한 방패막이 뒤에 숨어 자신들이 만들 결과물을 아티스트 본인이 스스로 얕잡아보는 일 따위 앞으로는 없었으면 좋겠다.
덧글
로그온 2020/10/21 00:34 # 답글
....게임판타지보단 사이버스페이스가 더 할말이 많고 흥미로운 주제를 만들어낼 수 있는데....
CINEKOON 2020/10/23 2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