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9 11:34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극장전 (신작)


불행한 시대의 불행한 사람들. 다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처럼, 시대가 불행했기 때문에 사람들도 불행했던 것인지 아니면 불행한 사람들이 모여 바글댔기에 불행한 시대가 도래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어찌되었든 영화는 오프닝과 엔딩에서 각각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의 기운을 암시하며 이 전쟁과 저 전쟁 사이에 낀 두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그 불행함을 다룬다. 

전쟁을 비롯한 시대의 광기에 끼어있던 두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역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배드 타임즈 - 엘 로얄에서 생긴 일>이었다. 그 영화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일촉즉발의 코멘트로써 기능하는 영화 아니었던가. 기성 세대로부터 탈주하기를 갈구하지만 그러면서도 스스로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여주는 젊은 세대의 영화 아니었던가.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역시 종종 히피 문화 비스무리한 것이 발견되고, 아버지 세대가 받은 일종의 저주를 아들이 물려받는 것만 같다는 점에서 역시 유사하게 느껴진다.

다른 영화 하나를 더 꺼내 코멘트하고 싶은데, 뜬금없지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불행을 다루는 태도는 매우 우연적이었다. 죽음은 인물들이 그저 그를 맞닥뜨렸기 때문에 이루어졌고, 대개가 동전을 뒤집는 우연으로 완성되었다. 반면 그에 대한 이 영화의 태도는 운명적이다.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모든 불행들은 그의 아버지가 전쟁통 속 한 군인의 죽음에 결부 되면서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주인공이 연쇄 살인마 커플에 의해 처하게 되는 위기 역시 그 아버지의 불운인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영화 초반부 이미 주인공의 아버지와 그 살인마 커플은 짧게 스쳐지나간 적이 있으니 말이다. 옛말에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주인공의 아버지와 그 살인마는 의자 하나를 두고 얼마나 많은 우연을 겹쳐 운명으로 만났던 것일까.

내레이션의 유무에 있어서도 영화의 운명론적 태도가 더 강조된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내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화자는 극중 그 누구도 아니다. 이야기 안에 포함되는 자가 아니고 그 이야기의 굴레 자체를 돌리고 있는 자다. 심지어 그 내레이션을 담당한 게 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을 쓴 작가라니. 이 운명적인 이야기와 이 불행한 세계를 직접 창조해낸 사람이 주인공들을 굽어 살피며 내레이션을 하고 있다니, 이건 그야말로 신의 목소리 아니겠는가. 조물주가 직접 전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영화의 운명론적인 태도가 한층 더 강조되지 않느냔 말이다.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제목. 원제는 'The devil all the time'이니까 '항상 악마가 존재한다' 정도의 의미로 직역할 수 있겠다. 맞다. 악마(나쁜 일)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악마(나쁜 일)가 사라질 때를 기다리거나 바라고 있어서만은 안 된다. 악마(나쁜 일)는 언제나 있으니, 그 악마(나쁜 일)가 있음에도 삶과 선을 붙잡고 버텨야만 한다. 아버지의 그걸 버티지 못했다. 완전히 닫힌 결말은 아닌 것 같아 조바심에 말하지만, 부디 아들은 그걸 버텨내는 삶을 살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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