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12 16:23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2015 대여점 (구작)


노장의 서슬퍼런 광기가 이런 것일까. 

어마어마하게 간결한 이야기다. 별다른 구체적 설명도 없이 그저 주인공의 뒷모습으로 시작해 처음부터 달리기 시작하는 영화. 주연 뿐이랴. 조연이라고 쓰고 사실상 주연이라 읽는 '퓨리오사'의 전사 역시도 에둘러 대사로 설명될 뿐, 구체적인 설명이 전무하다. 심지어는 초반 시점 세계관 최강자라 할 수 있을 그 '임모탄 조'마저 딱 한 줄짜리 악당으로 묘사된다. 별다른 설명이 뭐 있어, 그냥 망한 판국에 물 조금 갖고 있다고 파시스트 독재자가 된 인물 정도로만 언급하고 있는데.

그러나 정말이지 놀랍게도, 이 영화의 이야기가 얇다거나 허접하다는 느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 영화치고는 설명이 구체적이지 못하단 것 뿐이지, 사실상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 했어야한 정보는 이미 다 준거거든. 언제나 말했지만, 장르 영화에서는 세계관과 인물들에 대한 긴 정보를 간략하게 핵심 요약해 전달하는 것도 능력이다. '너네 이미 이런 거 많이 봤잖아?'로 일관하는 쿨한 태도. 이미 쌓여있는 장르물 역사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더 들을 필요가 없게끔 만드는 것. 선택과 집중. 바로 그 부분에서 역시 영화가 어마어마하게 훌륭하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캐릭터 소개와 함께 사건이 바로 시작되고, 그로인해 이야기와 액션이 같은 보폭으로 함께 발맞춰가는 패기 역시 엄청나다. 상술했지만 퓨리오사의 전사가 영화에선 상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왜 이런 탈출 겸 반역을 꿈꿨는지, 계획은 어떻게 세웠고 그러는 동안 느낀 감정들은 무엇인지. 그런 건 없다. 그냥 영화는 퓨리오사가 탈출을 감행하는 것부터 보여주고, 나머지 것들이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중언부언 지리멸렬 따위가 없는 영화다.

앞서 장르물 역사의 테두리 안에 놓이며 안전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영화라고 했었는데, 메시지로 돌진할 필요가 있다면 그 테두리를 과감히 넘어 오프로드로 진격하는 것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 영화이기도 하다. 제목에는 '맥스'를 박아뒀으면서 메시지 전달을 위해서라면 주인공을 퓨리오사로 변속 해낸다. 때로는 메인 주인공인 맥스가 뒷전에 서서 지지하고, 그 앞은 퓨리오사와 다른 여성들이 버텨낸다. 이렇게 남녀 주인공을 한 명씩 설정해놓고도 그 둘이 할리우드 액션 장르의 공식인 러브라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서로 타액이나 정액이 아니라, 오로지 혈액만을 공유하며 이루는 연대와 거기서 느껴지는 전우애. 맞다, 난 여전히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야 말로 훌륭한 페미니즘 영화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액션은 또 얼마나 훌륭한지. 거장의 피와 살을 갈아넣어 만든 듯한 Non-CG 액션 씬들은 끝내 관객들의 마음을 찢어발기고야 만다. 여러대가 벌이는 자동차 추격전의 동선과 묘사 뿐만 아니라, 맥스와 퓨리오사가 첫 대면하며 벌이는 막싸움 같은 대인 격투 액션까지도 복잡하고 더러워서 더 아름답다. 진짜 개봉 이후 하고 하고 또 했던 이야기지만, 달려드는 오토바이 떼들을 막으며 맥스와 퓨리오사가 합세하는 'Brother in arms' 시퀀스는 언제 보아도 강렬하고 흥분된다. 뭐, 할 액션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태산이지만 여기서 더 이야기 해봤자 동어반복이겠지. 하여튼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장르 영화에서는 '쾌감'과 '재미'가 항상 더 우선시 되어야 한다.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그걸 또 잘 해냈다. 보는내내 "와!"라고 할 수 있는 액션 영화는 생각보다 흔치 않다.

불행하게도, 한동안 요즘의 영화 관객들은 액션 & 어드벤쳐 영화의 영광을 오직 과거에서만 찾고 있었다. <다이하드>는 오랫동안 액션 영화의 본좌 자리를 유지했으며, <레이더스>는 '인디아나 존스'라는 희대의 아이콘을 데뷔 시키곤 이후 나올 모든 할리우드 모험 영화들의 조상이 되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터미네이터>는 혁명 그 자체였고, <쥬라기 공원>은 전설이 되었으며, <스타워즈 - 새로운 희망><스타워즈 - 제국의 역습>은 오래도록 남을 고전이 되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다이하드>의 전설은 5편에 이르러 존 무어 손에 의해 바스라졌고, 심지어 인디아나 존스는 그를 데뷔시킨 감독이 직접 등판 했음에도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터미네이터>는 기계 주인공을 다룬 영화 아니랄까봐 시리즈를 내내 리부트 시키기만 하다가 파손 되었고, <쥬라기 공원>은 이제 뻔하고 무난하기 만한 동물원이 되었으며, <스타워즈>는 초라하고 또 초라한 마무리로 팬들의 아우성만 들었다. 이렇게 과거의 영광들이 연달아 속수무책으로 희미해져만 가고 있는 이 때에, 원전의 노쇠한 감독이 다시 돌아와 기존 시리즈들 뺨따구를 후려칠 정도의 질로 만들어진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여러모로 귀감이 될 수 밖에. 

다시 말해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가 있단 말씀.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는 모던 클래식이고 새로 쓴 액션 영화계의 전설이며, 무엇보다 다른 어느 때도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영광이다. 그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우리 세대에 이런 영화를 하나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그저 감사해야할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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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로그온 2020/10/20 23:58 # 답글

    http://www.youtube.com/watch?v=zpUS1QSKTHA
    다이하드 하니까 얼마전에 다이하드 패러디한 다이하드 배터리 광고가 떠오르는 군요
  • CINEKOON 2020/10/23 22:13 #

    이 광고 너무 재밌었어요. 존 무어 이 새끼 어디로 갔죠? 지금이라도 잡아서 족쳐야 하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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