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형 유괴범들의 일상 밀착 카메라 방송이 이런 것일까. 시장통에서 30개들이 계란을 팔며 부업으론 범죄 조직의 살인 뒷처리를 맡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유사부자 관계의 두 남자. 이 조용하고 또 예의바른 두 남자 사이에 예상치도 못한 한 소녀가 걸어들어오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스포도 있이!
전혀 다른 장르의 전혀 다른 영화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바로 딱 떠오른 영화는 다름아닌 <존 윅>이었다. 1편에서 그런 언급 있잖아. '존 윅'이 죽사발 내놓은 킬러 시체들 처리해주려고 뒷처리 전담반 왔던 거. 금화 몇 닢 받아먹고는 시체처리까지 성실하게 임했던 그 남자들. <존 윅> 보던 당시에도 참 신선하고 재미있는 설정이라 생각했었는데, 시골을 배경으로해 한국적으로 로컬라이징 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같은 직업군을 다룬 영화 아닌가. 역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른 채가는 게 인지상정인 것이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전반부까지만 봤을 때. 영화의 신선함에 장르 영화의 팬으로서 활짝 웃게 된다. 평범한 소시민들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하는 악행. 그리고 마치 라이언 존슨의 <스타워즈>마냥 이리저리 꺾어대는 비틀기 신공. 캐릭터의 설정부터 상황의 묘사까지 전반적으로 신선하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유괴한 소녀의 보관을 명했던 보스는 바로 다음 씬에 반 피떡이 된 상태로 등장해 두 주인공의 상사에서 물건으로 그 가치가 급락한다. 유괴당한 소녀는 징징대지 않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며 극중 인물들 중 가장 성숙한 태도를 보인다. 여기에 초보 유괴범으로서의 주인공들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비웃음이 흘러나오기도. 하여튼 걸작이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영화의 전반부만 놓고보면 확실히 새로운 게 사실이다. 전반부만 놓고보면.
중반부의 어느 기점에 이르면 영화가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탄다. 유재명이 연기한 '창복'이 소녀의 몸값을 전달받는 바로 그 장면. 돈 가방 들고는 혼자서 지레 겁먹고 시장 이 곳 저 곳을 헐레벌떡 싸돌아다니다가 종국에는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 그리고 바로 사망. 뭐, 진짜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영화가 언급해주지 않지만 그 뒤로 '편안히 하늘로'라는 멘션까지 달아줬으니 이건 그냥 확인사살 아니겠나.
바로 거기서부터 영화가 틀어지기 시작한다. 이른바 '편안히 하늘로' 장면의 유머는 그 자체로 재미있다. 나야 원래부터 이런 B급 유머나 병맛 개그 좋아하는 편이니까. 문제는 이 영화의 전반부에 그런 B급 톤이 전혀 없었다는 거다. 전반부 역시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들이 들어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블랙 코미디와 병맛 개그 사이의 벽은 생각보다 높다. 전혀 그런 톤이 아니었던 영화에서 갑자기 돌출되는 병맛 개그. 여기서부터 영화의 톤 앤 매너가 종잡을 수 없어진다.
유괴당한 소녀는 짐짓 탈출 하고싶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탈출을 실행한 뒤 유아인의 '태인'을 만나자 스탠스가 180도 돌변한다. 방금까지는 그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으면서, 다시 태인을 만나니 얼른 그 집으로 돌아가자 말한다. 물론 여기엔 여러가지 해석이 따를 수 있다. 어린 아이니까 변덕이 끓어오른 것 아니냐. 또는 그 무섭게 생긴 자전거 아저씨를 보곤 조금이라도 익숙한 태인과 그 집이 다시 그리워진 것 아니냐. 또는 어쨌거나 물리적으로는 이길 수 없는 태인을 다시 만났으니 속마음은 그렇지 않아도 오로지 살기 위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척 했던 거 아니겠냐- 등등. 그러나 이는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이 소녀의 그 행동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반증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길 수 없는 태인을 만났으니 일단 다시 돌아가자고 한거라고? 그럼 그 집으로 돌아가서 경찰을 만났을 때는 잠깐이라도 그 경찰 편을 드는 등의 묘사가 있었어야지. 그런 거 전혀 없지 않나. 심지어 죽은 것처럼 보인 그 경찰을 묻으라고 태인에게 삽도 전해주잖아. 뭐야, 이거?
덩달아 메시지도 희미 해진다. 이건 악의 일상화를 말하는 영화인 건가? 아냐, 그것보단 인간을 인간 답게 하는 것들 중 '교육'의 무서움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니면 그냥 스톡홀름 증후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 마지막에 그들 모두가 행복하게 지냈던 한 때를 보여주는 에필로그가 있잖아. 그럼 '어떤 관계도 영원하지 않다'에 대한 이야기인 거 아닐까? 씨팔, 그 중 무엇도 선명하게 남지 않는다. 죽은 줄 알았던 경찰이 매장된 흙을 뚫고 나와 혼자 <데드 돈 다이>를 찍는 순간 역시도 최악이다. 이상한 싸구려 유머 톤이 영화의 후반부를 덩달아 싸그리 망쳐 놓는다. 이러다보니 캐릭터들의 설정마저도 그저 소비될 뿐이다. 태인은 왜 말을 못하는가? 태인은 왜 여동생과 단 둘이서만 살고 있는가? 있어보이게끔 포장만 하면 뭘해, 영화가 그에 대한 대답을 아무 것도 못하고 있는데.
영화가 스스로 마침표를 찍어주기만 했더라면 좀 더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는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관객으로서 종잡을 수 없는 영화가 나와버린 셈이다. 전반부의 패기를 후반부에까지 관철 시켰더라면 어땠을까. 이상하게 내 마음 속에 물음표만을 가득 남기고 혼자 끝나버린 영화의 느낌이다.
덧글
로그온 2020/10/21 00:11 # 답글
엄청나게 기대했는데 내용을 읽다보니 어으;;;;
아니 [리얼] 이후로 정신 못 차린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걸까요;;
CINEKOON 2020/10/23 2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