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5 13:45

뱀파이어 vs 브롱크스 극장전 (신작)


이야, 이야기만 놓고보면 내가 딱 좋아할 만한 영화란 말이지. <ET>를 베이스로 한 <기묘한 이야기> 풍의 이야기. 자전거를 탄 어린 아이들이 자신들을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을 등지고 스스로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여기에 뱀파이어라는 초현실적 소재 갖다 붙이고. 이런 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거란 말야... 근데 왜 이딴 식으로 밖에 못 하는 거냐고... 그것도 <기묘한 이야기> 만든 넷플릭스 너네가...

그래도 분명 중반부까지는 괜찮은 편에 속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존나 재밌었다는 건 아니고. 후반부에 어찌될지 그냥저냥 호기심이 유지됐다- 정도? 다소 뻔하긴 해도 주인공 세 아이의 역할 배분이 적절하고, <블레이드>를 직접 언급하고 심지어는 클립까지 몇 개 보여주는 등의 메타 영화적 센스도 호감이었다. 무엇보다 애기들이 존나 똘똘하고 귀엽더만.

근데 천신만고 끝에 가까스로 이어붙이던 이야기가, 후반부들어 완전 낭패를 본다. 뱀파이어를 처치하는 방식은 압도적으로 간결하고 허접하며, 고작 몇몇 아이들의 농간에 몇 백 년의 짬바를 가진 뱀파이어들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채 우후죽순으로 죽어나가고 있는 걸 보면... 씨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낮잠 때리고 있는데 거기다 말뚝을 갖다 박는 게 말이 되냐? 이거 너무 반칙 아니냐고.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게 우두머리 뱀파이어와 브롱크스 사람들의 다굴 매치다. 동네 무시하는 언사 한 번 했다고 근처 사람들이 다 모여 대걸레 자루 같은 것들 하나씩 쥐고 우두머리 뱀파이어를 패는데, 일견 우두머리 뱀파이어가 잘 디펜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냥 다구리에 쩔쩔 매고 있는 거잖아. 아무리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였다 할지라도 주 소재인 뱀파이어를 이 정도로 홀대해도 되는 거냐고. 

다 보고 나서 더 의아했던 게... 주인공 세 소년은 모두 흑인이거나 남미 이민자 출신의 아이들이었다. 여기에 브롱크스를 이루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도 모두 비슷한 상황. 젊은 백인 여성이 이사오니까 다들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잖나. 근데 생각해보면, 뱀파이어들은 어쩔 수 없게도 다 백인처럼 보인다. 일단 얼굴들이 다 새하얗게 질려있으니까. 그러다보니 배우들도 다 백인 위주 캐스팅이고. 그러니까 이게 따지고 보면... 흑인 및 이민자 등의 유색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그걸 조금씩 잠식하려드는 백인 외지인들을 때려잡는 마을 사람들의 연합 이야기가 이 영화의 전부인 거잖아? ...... 이거 피부색만 바뀌었지 완전 트럼프식 마인드 아니냐?

넷플릭스야, 이런 거 제작할 시간에 <기묘한 이야기> 시즌 4 촬영 진작 들어갔으면 그게 벌써 나왔었겠다. 애먼 데에다 돈 꼬라박는 거 영화산업적으로는 충분히 기쁘고 응원할 만한 일인데, 그럼 퀄리티 관리에 좀 신경을 쓰던지...

뱀발 - 이 영화 때문에 갑자기 <블레이드> 시리즈 정주행하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왓챠랑 넷플릭스에 고루 올라와있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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