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고 있던 '페이 페이'. 그러나 전부나 다름 없었던 엄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소녀는 기대는 곳 없이 그저 사무친다. 그러던 와중 아빠가 소개하려드는 이른바 새 엄마 후보를 보고 페이 페이는 놀라 자빠진다. 아니, 우리 가족이 믿던 예전 그 설화를 아빠는 그새 다 잊은 것인가? 달의 여신인 '항아'가 자신의 연인인 '후예'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오랫동안 변치 않은 상태로 간직해왔는데!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 아빠는 이제 더 이상 그를 믿지 않게된 것일까?
어린 아이가 느끼는 상실의 깊이에 대해서 탐구하는 작품으로, 초반 도입부는 썩 진지하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의 주인공인 항아를 찾아 주인공 소녀가 달로 가겠답시고 로켓을 만드는 순간부터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영화가 급 커브를 돈다. 근데 '상실'이라는 사뭇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루려면 이야기는 통통 튀는 게 맞지. 그래야 부담없이 영화 볼 수 있는 거지.
옆동네의 '지미뉴트론' 마냥 페이 페이 역시 천재 소녀 기믹을 가진 주인공이다. 인터넷 쇼핑한 것들로 뚝딱뚝딱 몇 번 해서 대기권 돌파하는 로켓까지 만든 실력이면 존나 쩌는 과학 영재지. 근데 또 이 과학도가 믿고 있다는 게 일명 '영원한 사랑'이고, 또 페이 페이는 달에 사는 옥토끼와 항아의 전설을 믿는다. 이 점이 재미있다. 보통 민간 설화나 신화 등은 과학과 완전 반대되는 길을 가잖아. 과학자들이 올림포스나 발할라를 믿는 건 아니잖아. 그러나 페이 페이는 믿는다. 과학과 예술 사이, 이론과 이야기 사이 벽을 가볍게 넘나드는 주인공의 태도가 귀엽다. 그냥 자기 믿고 싶은대로 믿는 건데, 사실 애들이 다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각적인 아이디어와 그 연출이 뛰어난 성장 판타지다. 앞서 말했듯 과학 이론과 허무맹랑한 이야기 사이를 오가는 태도의 영화이다 보니, 전반부에서 페이 페이가 그 사이를 넘나드는 장면들에서의 시각적 묘사가 훌륭하다. 달의 여신인 항아를 묘사한 그림에서 로켓 설계도로 화면 전환 된다거나 하는 등. 그런 부분에서 확실히 잘만든 애니메이션으로써의 시각적 쾌감이 분명 있다.
달로 넘어가 펼치는 모험에서도 이 시각적 다채로움은 유지된다. 항아가 세운 달의 나라는 굳이 만져보지 않아도 말랑말랑할 것만 같은 질감으로 가득하고, 형형색색 다채로운 색깔로도 흥미를 유발시킨다. 거대한 개구리들이 떼거지로 점프 뛰어가는 장면도 신선. 근데 사실 다 필요없고 '고비'가 존나 귀엽다. 말그대로 우주 강아지인데, 보는 나로서도 그냥 집에 데려가 키우고 싶더라. 아니, 진짜 지구로 데려가면 안 되는 거야? 왜 안 돼? 페이 페이의 애완 토끼는 달나라에 두고 왔잖아. 걔를 고비랑 트레이드하면 안 되는 거임?
엄마를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그리워하는 페이 페이에게 고비가 노랫말로써 말한다. 매순간 다른 건 멋진 일이라고. 과거를 잊으면 밝은 미래가 있다고. 물론 고비 말마따나 과거의 기억을 싸그리 없애버리는 건 별로 추천할 만한 게 못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과 관계와 사람은 변한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건 그 변화마저 인정하고 감내하고 또 사랑하는 것이다. 잊고 보내주는 것. 보낸다고 해서 그게 영원하지 않은 건 아닌 것. 여기에 항아 마저도 슬픔의 방에 들어온 페이 페이에게 덧붙이지 않나. 넌 여기에 왔지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그렇다. 우리는 슬픔을 느끼겠지만 때가 되면 그 슬픔에서 벗어날 줄도 알아야한다. 그 때와 그 즈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될 때에, 아이들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여러모로 JJ 에이브람스의 <수퍼 에이트> 생각이 나는 영화였다. 이야기 줄기나 품고 있는 정서 자체가 참 비슷해서. 하여튼 상큼한 애니메이션이다. 아, 모르겠고 그냥 나 고비 데려갈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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