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5 17:24

베이비시터를 위한 몬스터 사냥 가이드 극장전 (신작)


영화의 초반은 전형적인 하이틴 판타지 장르의 도입부다. 끔찍한 과거의 기억 때문에 트라우마에 잡혀 사는 주인공 소녀. 그 때문에 같은 학교 급우들에겐 무시받기 일쑤지만 자칭 타칭 수학에 있어서 만큼은 천재 소녀지. 당연히 이 소녀가 좋아하는 소년도 있고, 이 소녀를 괴롭히는 다른 소녀도 존재한다. 도입부만 놓고 보면 진짜 존나 뻔함.

그러나 여기에 꽤 괜찮을 수 있는 설정이 끼어들어온다.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괴물 사냥 결사단이 존재하고, 그들 이 모두 베이비시터들이라는 것. 그리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이들이 몬스터들을 사냥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컨셉의 이야기다, 딱. 일단 어른들이 모르는 아이들의 모험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현실과 결합된 어반 판타지라는 점에서도. 하나 더 추가하면 구체적인 직업군 묘사가 있다는 것 역시 그렇다.

<블레이드>의 어린이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태반이 모르는 뱀파이어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를 사냥하는 이른바 '데이워커'가 활약하는 세계관. 그 세계관을 딱 아동용 모험 영화로 이식한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 때문에 분명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좀 조잡하고 유치해보이긴 해도 이 베이비시터 결사단들이 활용하는 RPG 게임스러운 무기들과 비밀 본부 등의 설정들이 주는 나쁘게 말해 유아적인, 좋게 말해 본능적인 쾌감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프로덕션 디자인에 신경을 좀 쓴 느낌까지. 고양이 마녀가 앉아있던 소파가 수십마리의 고양이들로 분해되는 광경이라거나 역시 조금 유치하기는 해도 '그랑기뇰'의 아지트, 베이비시터들의 본부 등 세트 같은 전반적인 프로덕션 디자인들이 평균적으로 잘 되어 있음.

문제는 꽤 괜찮은 설정을 가져왔음에도 이후 전개는 역시 전형적인 틴에이지 영화라는 점. 인물들의 갈등과 그 봉합 역시 존나 뻔하고, 짝사랑 대상과 맺어지는 주인공 소녀의 결말까지 안 보고도 읊을 수준. 근데 또 따지고 보면 애초 이 틴에이지 영화들이라는 게 말그대로 10대 관객들을 타겟팅한 건데 그거 가지고 존나 전형적이라고 마냥 욕하는 건 또 아닌 것 같고... 주요 대상인 10대 관객들에게는 그냥 재밌고 신나는 경험일 수도 있잖아... 그냥 그렇다고...

여기에 하나 더.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늘 그렇듯, 클라이막스 액션 연출이 진짜 개허접해진다. 액션 연출 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동선들까지 죄다 이상함. 뭐, 전반부라고 훌륭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들어서 후딱 끝내버리자-라는 마인드로 마무리 지으려는 게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서 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메인 빌런인 그랑기뇰을 톰 펠튼이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가 대단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근데 캐스팅이 그냥 존나 웃기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 톰 펠튼ㅋㅋㅋㅋㅋㅋㅋ 애들 겁줘야하는 역할인데 말 존나 많고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혼자 노래까지 부르고 앉았음. 입닥쳐, 말포이- 해주고 싶다. 심지어 하는 짓도 은근히 허당임. 악몽 파워 갖고 있는 애를 납치했으면 얘가 자야하는 건데 하필 불면증 걸린 애를 데려왔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톰 펠튼 진짜 우리 세대 속 빈 강정의 아이콘인데 잘 데려다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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