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5 17:55

도굴 극장전 (신작)


사실 소재만 도굴이지, 역시나 그 문법은 이제 눈 감고도 충무로가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전형적 범죄 오락 영화의 그것이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면 <인디아나 존스>보다 <내셔널 트레져>를 목표로 잡고 만들어진 것 같은 영화란 소리. 그런데 실은 <인디아나 존스> 못지 않게 <내셔널 트레져>도 존나 재밌는 영화거든. 그 영화에 비하면 이 영화도 뭐...


스포 발굴!


'도굴'이라는 소재 자체는 괜찮다. 한국 영화들 중에서 이 소재를 별로 써먹었던 적이 없었으니 이 정도면 참신 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걸 다루는 방식이 구태의연 하다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온고지신이라는 건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봤던 전개라는 점에서 도굴이라는 참신한 소재마저 아깝게 흔들린다. 웃긴 게, 정작 가장 비슷한 영화는 <인디아나 존스>나 <내셔널 트레져>가 아니라 <꾼>이라는 것이다. 유들유들한 성격에 허세 적당히 낀 양아치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일단 그렇고, 그 주인공이 악당 무리와 '적과의 동침'으로 한 팀을 이룬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 주인공 파티원들의 성격이나 조합도 비스무리하고, 무엇보다 범죄를 풀어나가는 방식과 더불어 사건 이면의 개인적 복수심에 이야기의 토대를 두었다는 것까지 그렇다.

내 기억에 <꾼>의 주인공 파티도 그랬던 것 같은데. 거기도 주인공과 더불어 같은 팀원들이 죄다 악당에게 개인적 원한있지 않았어? 근데 그거 속이고 동업하다가 뒷통수 때리는 전개였잖아. <도굴>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훈이 연기하는 주인공은 송영창이 연기하는 악당에게 아주 깊은 개인적 원한이 있다. 그리고 권선징악의 메시지가 회수되는 결말부에 이르러 그걸 다 밝히고 악당의 뒷통수를 쌔린다. 그 원한 관계를 존나 뜬금없는 타이밍에 존나 구린 느낌의 플래시백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 또한 존나 안습한 상황이다.

도굴 작업하는 데에 쌩뚱맞게도 카메라 실황 중계 설정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이미 뻔한 영화가 더 뻔해진다. 주인공 파티가 조그마한 카메라로 왕의 무덤 내에 있는 문화재를 확인하고, 또 그 영상을 악당 두목이 흐뭇한 미소로 보고 있는 순간부터 게임은 끝난 거다. 관객으로서 그런 생각이 든다고. "이거 설마 또 녹화 야바위 수법인가?" 이미 찍어둔 영상을 라이브 영상으로 속여 악당 털어먹는다는 트릭은 <오션스 일레븐>이 했던 이래로 이 장르에서 하고 하고 또 했던 수법이다. 근데 이걸 이렇게 또 할 줄이야... 오히려 너무 뻔해서 새롭게 느껴지는 이 아스트랄한 기분은 뭘까...

일견 하이스트 영화라면 주인공 그룹의 팀플레이가 중요한 법. 영화는 거기서도 실패한다. 주인공은 정확히 도굴이라는 행위에 있어서 어떤 전문성을 갖고 있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다. 조우진이 연기한 '존스' 박사 역시 마찬가지다. 벽화 전문 도굴꾼이라는 설정인데 어차피 뒤에 가서는 땅 파는 모습 밖에 볼 게 없음. 그래도 그게 그나마 낫지... 임원희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새도 없이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땅만 파고 있다고...

주인공 '강동구'의 아버지와 여동생은 그 존재감과 묘사를 희미하게만 하고 있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포인트에서는 그들을 이용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비장의 카드로 쓸 거면 최소한 캐릭터로서 살아있게 만들어줘야지 그냥 열쇠로만 쓰면 어쩌라는 거냐고.

무엇보다 도굴이라는 방식이 생각보다 별로 재미가 없더라고. 이게 진짜 <인디아나 존스>나 우리나라의 <원스 어폰 어 타임> 같은 모험 영화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도굴 그 자체에 별 흥미가 안 생기게 연출해놨다. 조금 뻔하더라도 무덤 내부에 함정이나 퍼즐 같은 게 있었더라면 말도 안 될지언정 어떤 흥미라도 끌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영화는 내내 땅 파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 그러다보니 왜 굳이 도굴이라는 소재를 썼어야만 했을까-하는 의문도 따라온다. 왜긴 왜야 그냥 다른 포장지가 필요했던 거지

그와중에 제일 맘에 안 드는 건 일개 도굴꾼들을 흡사 애국지사 단체처럼 표현해내고 있다는 점. 친일 악당과 대립한다는 점도 그렇고, 범죄 저지르는 집단이면서 나라를 위해 다 훔쳐오겠다는 마인드도 존나... 아니, 어차피 영화인데 할 거면 그냥 양아치 속물들처럼 쿨하게만 묘사했어도 이해 했을텐데 왜 또 이렇게까지 도덕적이신 건데요?

그럼에도 신혜선과 조우진의 연기는 언급할만하다. 신혜선은 작품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다. 이미 유명한 특유의 딕션은 물론이고, 잔물결처럼 얼굴에 이는 표정의 세심한 변화가 인상적이다. 여기에 조우진은 은근히 코믹 연기를 잘 받치더라고. 물론 이 영화의 유머가 다 불발이었던 건 맞는데, 걱정했던 것보다는 스무스하게 개그를 받아 잘 넘기더라. 재재발견의 느낌이다. 그러나 이제훈의 연기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충무로는 왜 그리도 범죄 오락 영화에 집착하는 걸까? 이것저것 여러 소재와 장르들을 다 갖다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만드는 건 다 범죄 오락 영화의 어떤 태로 귀결되는 모양새잖아. 이거야말로 똑같은 내용물 팔면서 색놀이 스킨놀이 짓거리 하는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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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ID U MISS ME ? : 오션스 11, 2001 2020-11-17 17:35:51 #

    ... 감의 소유자였다면 존나 이야기 전체가 도매가로 후려쳐졌을 텐데 악당마저 존나 번듯하고 품위있어. 이 정도면 모든 캐릭터들에 열과 성을 다 쏟은 거 맞지. 최근 &lt;도굴&gt; 보고나서도 이야기했던 건데, 카메라 녹화 영상 트릭은 거진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거다. 그만큼 잘 썼고, 이 영화가 처음 나올 당시에는 기발했다. 그 ...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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