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7 17:35

오션스 11, 2001 대여점 (구작)


스티브 소더버그 특유의 초호화 멀티 캐스팅 수법이 빛을 발했던 영화이자 하이스트 영화의 모던 클래식으로 남아버린 영화. 막말로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에서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던 범죄 오락 영화들 대부분이 이 영화를 레퍼런스로 안 삼을 수가 없었을 거다. 거의 빚지고 있는 셈.


스포일러 일레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타겟을 제대로 훔쳐낸다-는 컨셉에 거의 완성형처럼 여겨지고 있는 영화잖아. 그도 그럴만 한 게, 가장 중요한 이 열한 명의 프로페셔널들을 제대로 소개해내는 임무를 어느정도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래. 거의 두 시간짜리 영화인데, 전반부라 할 수 있을 앞선 한 시간 동안은 이 인물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에 다 쓴다. 각자 어떤 성격과 어떤 취향들을 갖고 있는지, 대략적인 인간 관계는 어떠하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그들의 주특기는 무엇인지. 이 모든 걸 스티브 소더버그가 유려하게 지휘 해낸다. 열한 명의 멤버들 중에서도 간부급이라 할 수 있을 주모자 '대니 오션'과 행동대장 '러스티'에게는 그 캐릭터성을 좀 더 가산해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안 그래도 인물들 많은데 여기에 악당 역할인 앤디 가르시아의 '테리 베네딕트' 캐릭터까지도 잘 소개하고 있다는 점. 아, 한 명 더 있지. 줄리아 로버츠의 '테스'도 있잖아.

인물들 존나 많은데 그걸 다 잘 소개해냈다는 점은 각본가와 감독의 역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캐릭터들에 일말의 매력과 개성을 부여한 것은 태반 배우들 덕이다. 조지 클루니는 특유의 능글맞음을 주 얼굴로 다시금 내세워 그만의 매력을 다시 확보하고, 브래드 피트는 멋지되 침착하고 또 성실한 느낌의 외유내강형 조력자 캐릭터로 마음에 닿는다. 이외에도 버니 맥, 돈 치들, 케이시 애플렉, 맷 데이먼 등의 호연이 좋고 심지어 악당인 앤디 가르시아마저 완벽하다! 주인공이 열한 명이나 되는 영화이다보니 그들을 모두 상대할 단 한 명의 악당이 나풀나풀 가벼운 무게감의 소유자였다면 존나 이야기 전체가 도매가로 후려쳐졌을 텐데 악당마저 존나 번듯하고 품위있어. 이 정도면 모든 캐릭터들에 열과 성을 다 쏟은 거 맞지.

최근 <도굴> 보고나서도 이야기했던 건데, 카메라 녹화 영상 트릭은 거진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거다. 그만큼 잘 썼고, 이 영화가 처음 나올 당시에는 기발했다. 그건 인정이다. 그러나 열한 명의 프로가 모인 것치고는 범죄의 전체적인 계획과 그 실행면에서 영화가 묘사를 좀 적게 한 느낌이 든다. 사실 이거 20여년 전에 처음 봤을 땐 그런 것 못 느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뭐랄까... 일종의 추억 보정이 깨진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아, 물론 여전히 재밌는 영화인 것은 맞다. 다만 내가 기억했던 것에 비해 그 범죄 행각이라는 게 좀 덜 보였을 뿐... 그러니까 러스티가 분명 열한 명은 있어야 하는 작전이라고 했거든. 근데 난 왜 이렇게 잉여인력이 많아 보였지...? 군대 갔다 와서 그런 거 아닌가 열명 분의 일을 다섯명이 해내는 기적!

그러니까 웃기지만, 잘 만든 하이스트 영화임에도 범죄 행각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각 캐릭터들의 매력에 더 끌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트릭과 반전이 얼마나 기발 했는지 보다, 결국 허울좋게 웃으며 범죄현장을 떠나는 브래드 피트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더 기억되는 영화. 훔친 돈의 양과 그 가치보다도, 한 탕을 마무리하고 분수를 보며 하나둘씩 떠나갔던 열한 명의 인물들에게 더 마음이 남았던 영화. <오션스 11>은 괜찮은 하이스트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캐릭터 영화이기도 했던 것이다.

뱀발 - 버니 맥의 모습을 오래간만에 다시 보아 좋았다. 좋은 곳에 가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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