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티브 소더버그 특유의 초호화 멀티 캐스팅 수법이 빛을 발했던 영화이자 하이스트 영화의 모던 클래식으로 남아버린 영화. 막말로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에서 우후죽순으로 만들어지던 범죄 오락 영화들 대부분이 이 영화를 레퍼런스로 안 삼을 수가 없었을 거다. 거의 빚지고 있는 셈.
스포일러 일레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하나의 타겟을 제대로 훔쳐낸다-는 컨셉에 거의 완성형처럼 여겨지고 있는 영화잖아. 그도 그럴만 한 게, 가장 중요한 이 열한 명의 프로페셔널들을 제대로 소개해내는 임무를 어느정도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래. 거의 두 시간짜리 영화인데, 전반부라 할 수 있을 앞선 한 시간 동안은 이 인물들 이야기를 풀어내는데에 다 쓴다. 각자 어떤 성격과 어떤 취향들을 갖고 있는지, 대략적인 인간 관계는 어떠하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그들의 주특기는 무엇인지. 이 모든 걸 스티브 소더버그가 유려하게 지휘 해낸다. 열한 명의 멤버들 중에서도 간부급이라 할 수 있을 주모자 '대니 오션'과 행동대장 '러스티'에게는 그 캐릭터성을 좀 더 가산해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안 그래도 인물들 많은데 여기에 악당 역할인 앤디 가르시아의 '테리 베네딕트' 캐릭터까지도 잘 소개하고 있다는 점. 아, 한 명 더 있지. 줄리아 로버츠의 '테스'도 있잖아.
인물들 존나 많은데 그걸 다 잘 소개해냈다는 점은 각본가와 감독의 역량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캐릭터들에 일말의 매력과 개성을 부여한 것은 태반 배우들 덕이다. 조지 클루니는 특유의 능글맞음을 주 얼굴로 다시금 내세워 그만의 매력을 다시 확보하고, 브래드 피트는 멋지되 침착하고 또 성실한 느낌의 외유내강형 조력자 캐릭터로 마음에 닿는다. 이외에도 버니 맥, 돈 치들, 케이시 애플렉, 맷 데이먼 등의 호연이 좋고 심지어 악당인 앤디 가르시아마저 완벽하다! 주인공이 열한 명이나 되는 영화이다보니 그들을 모두 상대할 단 한 명의 악당이 나풀나풀 가벼운 무게감의 소유자였다면 존나 이야기 전체가 도매가로 후려쳐졌을 텐데 악당마저 존나 번듯하고 품위있어. 이 정도면 모든 캐릭터들에 열과 성을 다 쏟은 거 맞지.
최근 <도굴> 보고나서도 이야기했던 건데, 카메라 녹화 영상 트릭은 거진 이 영화에서부터 시작된 거다. 그만큼 잘 썼고, 이 영화가 처음 나올 당시에는 기발했다. 그건 인정이다. 그러나 열한 명의 프로가 모인 것치고는 범죄의 전체적인 계획과 그 실행면에서 영화가 묘사를 좀 적게 한 느낌이 든다. 사실 이거 20여년 전에 처음 봤을 땐 그런 것 못 느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뭐랄까... 일종의 추억 보정이 깨진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아, 물론 여전히 재밌는 영화인 것은 맞다. 다만 내가 기억했던 것에 비해 그 범죄 행각이라는 게 좀 덜 보였을 뿐... 그러니까 러스티가 분명 열한 명은 있어야 하는 작전이라고 했거든. 근데 난 왜 이렇게 잉여인력이 많아 보였지...? 군대 갔다 와서 그런 거 아닌가 열명 분의 일을 다섯명이 해내는 기적!
그러니까 웃기지만, 잘 만든 하이스트 영화임에도 범죄 행각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각 캐릭터들의 매력에 더 끌리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트릭과 반전이 얼마나 기발 했는지 보다, 결국 허울좋게 웃으며 범죄현장을 떠나는 브래드 피트의 여유로운 표정으로 더 기억되는 영화. 훔친 돈의 양과 그 가치보다도, 한 탕을 마무리하고 분수를 보며 하나둘씩 떠나갔던 열한 명의 인물들에게 더 마음이 남았던 영화. <오션스 11>은 괜찮은 하이스트 영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좋은 캐릭터 영화이기도 했던 것이다.
뱀발 - 버니 맥의 모습을 오래간만에 다시 보아 좋았다. 좋은 곳에 가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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