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브라이트>로 오랜 방황의 시기를 보내다 자신의 나와바리인 LA 뒷골목으로 다시금 돌아온 데이비드 에이어의 신작. <브라이트>도 LA 뒷골목 다룬 영화 아니었냐고
스포 콜렉터!
'세금 징수원'이라는 제목답게 주인공은 세금 받으러 다니는 인간이다. 문제는 이 인간이 국세청 소속 공무원이 아니라는 것. 그가 삥 뜯는 대상은 LA의 곳곳에 산재해있는 각기다른 범죄 조직들이다. 그러니까... 좀 더 쉽게 말하면 주인공이 속해있는 범죄 조직이 너무나도 강력한 조직이라, 다른 잔챙이 범죄 조직들을 봐주고 보호해주는 댓가로 그들에게 세금 아닌 세금을 받는다는 것. 그냥 세계정부와 칠무해의 관계를 생각하면 편하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그동안 공간적 배경이 LA 뒷골목이든, 아니면 2차 세계대전의 한복판이든 가랑비에 젖듯 광기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왔다. 때문에 그런 작가주의적 태도로 이 영화를 관람하고 있던 나로서는, 주인공인 '데이빗'이 LA 뒷골목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나타난 새로운 신흥강자 '코네호'와 마주치는 중반부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이제 데이빗이 저 코네호라는 미친놈한테 호되게 당하겠구나.
데이비드 에이어에 대한 그 작가주의적 해석은, 이 영화에 있어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답인 것 같다. 일단 코네호가 존나 미친놈인 건 맞다. 마약 팔고 매춘하고 사람까지 죽이는데 미친놈인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 코네호는 그런 일반적인 갱스터들을 저만치 따돌려버린다. 멕시코에서 왔다는 이 새끼는, 몸에 새긴 잉카 문명의 타투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딱 그만큼 더 미친놈이다. 아니, 21세기 미국의 LA라는 대도시 한복판 어딘가에서 인신공양을 벌인다니까?! 부두술사라도 되는지 벽에 이것저것 마구잡이로 그려놓고 닭피 같은 거 뿌리더니 나중에는 진짜로 사람 목까지 따며 악마에게 바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진퉁 미친놈이지.
근데 존나 웃긴 건, 그 범죄와 광기의 세계를 너무나도 비웃고 싶게 그렸다는 점이다. 갱스터 영화나 느와르 장르들은 대개 범죄자들을 미화하기 마련이다. 그들의 의리와 그들의 우정, 사랑, 믿음, 헌신, 그 밖의 모든 것들이 다 미화되고 멋지게 포장되지 않나. 그러나 <택스 콜렉터>에는 그딴 게 없다. 아니, 물론 100%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 그런 묘사들이 존재하기는 하거든. 근데 그게 있다가도 없다. 존나 찐한 사나이들의 우정과 의리를 그리는가 싶더니 바로 직후 씬에서 다 탕탕절 맞이하고 골로감.
아닌 게 아니라 거의 주연처럼 소개되는 샤이아 라보프의 '크리퍼'가 생각보다 일찍 죽는다. 이 새끼는 별명도 악마고 만나는 범죄자들마다 오줌 지릴 정도로 무서워하는 걸로 묘사가 되는데, 보통 이런 캐릭터를 상정 해놓으면 못해도 중반부에는 그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만한 씬을 배치하잖나. 마치 <신세계>의 '정청'처럼. 그러나 데이비드 에이어는 그 길을 택하지 않는다. 캐릭터는 존나 살벌하고 있어보이게 조형해놓고 정작 솜씨 발휘 해야만 할 것 같은 부분에서 그냥 죽여버린다.
그러다보니 그런 생각이 든 거다. 아, 이건 마틴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는 영화구나-라는. 스콜세지의 갱스터 영화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나. 범죄자들은 미화되지 않고, 오직 비열하고 또 비열한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나. 그리고 대개 그들의 최후는 허무하면서도 비참하지 않나. <택스 콜렉터>가 딱 그렇다. 주인공이 뭔가 할 것 같았는데 죽어버린다. 또다른 주인공 역시 뭔가 할 것 같았고, 실제로 뭔가를 하긴 하는데 그게 썩 속 시원하지가 않다.
여기에 하나 더 끼어들어오는 텍스트. 데이비드 에이어가 커리어 최초로 종교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더라. 끊임없는 종교적 맥락들이 영화 속으로 치고 들어온다. 일단 주인공 데이빗부터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으로 묘사되고, 실제로 영화의 시작지점에서도 가족들과 식전기도를 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여기에 주인공의 절친이라 할 수 있는 크리퍼는 무신론자로, 이 때문에 데이빗과 크리퍼는 종종 장난끼 어린 다툼을 하기도 한다. 그랬던 이들에게 갑자기 등장한 악마숭배자 외지인. 그는 실제로 데이빗을 거의 반 죽여가며 이런 말도 한다. "나는 악마를 숭배해. 네가 믿는 신은 나약해!"라고. 그리고 이 기독교 신자와 악마 숭배자 사이에 끼어있던 무신론자는 얄짤없이 사망. 악마를 믿는 것보다 아무 것도 안 믿는 게 더 위험하다는 메시지인가. 의미야 어찌되었든 악마를 숭배한다는 놈이 총까지 들었으면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인 것이다.
그 외에 영화는 존나 뻔하다. 일어날 것 같았던 일들은 여지없이 모두 다 일어나고, 그걸 표현해내는 방식도 후지다. 플래시백 쓰는 건 이제 좋다 이거야. 허나 왜그리들 플래시백에 이상한 세피아톤의 색감 아직까지 넣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네. 이토록 촌스러운데. 또, 영화가 지나치게 폭력적이기도 하다. 뭐, 슬래셔 영화들 마냥 대놓고 보여주는 정도는 아닌데도 하여튼 유혈 묘사가 많다. <드라이브> 마냥 발길질로 머리통 깨버린다거나... 근데 다 보고나면 이 정도로 묘사할 필요가 있는 장면이었나 싶음. 의미랑도 별로 관계없고, 무엇보다 그 자체로 장르적인 쾌감도 안 생기게 연출해놨다. 어중간하게 이게 뭐야?
홍보를 통해 액션 영화로 포장되어 있지만 딱히 액션이라 할 만한 것도 별로 없고, 결말도 존나 난해하다. 내가 이거 종교 영화 같다고 했었잖아. 결말이 가관임. 주인공이 수감되어 있는 보스이자 아버지와 통화하는 것으로 마무리. 아버지 왈, "너만의 권력이 생긴 거야~"라는 식으로 지껄이는데 그걸 아들이 거부하는 것으로 종료. 이건 뭐... 성부와 성자 관계인 건가? 심지어 막판에 주인공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끝나기도 한다. <살인의 추억>, <500일의 썸머> 모멘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이 연출은 대체 왜 하신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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