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26 12:47

이웃사촌 극장전 (신작)


이환경 감독의 <7번방의 선물>에 좋지 않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별로 기대감이 없는 작품이었다. 보기 전에 생각했다. 충무로의 흥행 필승 공식인 전반부 코미디 + 후반부 감동 조합의 영화겠지. 막판에는 엉엉 울어제끼며 최루성 신파 남발하는 그런 영화겠지. 보기 전엔 딱 그랬었다.


스포사촌!


놀라운 건 영화가 꽤 괜찮다는 것이다. 물론 흥행 필승 조합인 동시에 뻔한 조합이기도 한 전반부 코미디 + 후반부 감동 코드로 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항상 말했듯, 뻔하고 노골적이더라도 잘 만들어버리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래, 그래도 단점부터 말해보자. 한 번 더 말하면, 일단 뻔하지. 전반부는 코미디고 후반부는 감동 코드다. 다만 전반부의 코미디가 너무 약하다. 웃음 타율이 너무 적어. 코미디 장르 영화로 보자면 이게 가장 치명적인 단점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허무 개그만 남발하고 있는 것은 또 아니다. 기대를 내려놓고 본다면 그냥 소소하게 볼 수 있는 정도는 되는 코미디다. 하지만 어쨌거나 영화에 빵빵 터지는 재미가 없다는 건 문제지.

지나치게 설명적이고 많은 플래시백 남발도 맘에 들지는 않는다. 관객들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플래시백이 많다. 이건 뭐... 관객들의 기억력을 믿지 못해서 이러는 건가? 더불어 후반부에 등장하는 '2개월 후'라는 자막 때문에 영화의 리듬감이 급격히 매몰되는 부분 역시 아쉽다. 보통 이런 종류의 자막은 영화 다 끝내고 에필로그 나오기 직전에나 쓰는 거잖아. 게다가 이틀 후나 2주 후도 아니고 2개월 후면 관객으로서는 약간 내려놓게 되잖아. 근데 이 영화는 그 자막 이후에 클라이막스가 위치해있다. 그 점에서 영화의 리듬이 쫙 떨어짐.

그러나.

레퍼런스로 삼았을 게 분명한 <타인의 삶>이 그랬듯이, 영화는 도청이라는 소재를 통해 국가와 체제를 뛰어넘는 인간적인 공감의 역설을 잘 그려낸다. 체제와 가치관으로 나뉘어져있던 인물들이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의 살결을 맞대다가 그 모든 걸 뛰어넘는 인간적 관계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 '대권'과 '이의식'은 함께 대화를 하고, 목욕을 하고, 담배를 태우는 것으로 그걸 만들어낸다. 여기에 대권은 어머니를, 의식은 딸을 각각 잃는다는 것으로 상실의 고통을 겪고 그로인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공감은 한가지 공(共)에 느낄 감(感)을 쓴다. 서로가 똑같은 한가지를 느꼈기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대권과 의식에겐 그것이 상실의 고통과 무좀이었다. 그렇게 둘은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인물들의 딜레마를 잘 살리고 있기도 하다. 대의를 위해 위급한 상태의 딸에게로 당장 달려가지 못하는 의식의 모습이나, 운동권인 동생과 출세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 그 부분들에 과도한 슬로우모션을 건다거나 하는 등의 전형적 연출이 없어 더 좋았음.

더불어 전형적이긴 해도 그걸 담아내는 연출이 훌륭하다. 말벗이 필요하다며 흐느끼는 옆집 의식의 앞에 당도한 옆집 대권의 모습이 하나의 쇼트로 담겨질 때, 그 연출이 빛을 발한다. 또, 클라이막스의 사건 해결 방식에 유머가 존재한다는 점도 훌륭한 연출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영화들이 앞에서는 가볍게 통통 튀다가 뒤에서는 감동 주느라 한없이 진지해지기만 하잖아. 감독의 전작 <7번방의 선물>이 그랬던 것처럼. 허나 <이웃사촌>은 가장 중요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에도 코미디를 섞는다. 비슷한 다른 영화였다면 대권이 비장한 표정으로 운전하는 자동차를 트럭에 갖다 박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옷을 홀딱 벗고 날뛰는 해프닝을 만드는 것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 자체로 빵빵 터지는 개그는 아니지만, 착실한 유머 요소로써 사건을 마무리 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하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부터는 김희원이 연기하는 메인 악역도 그 행동거지와 무게감이 싹 달아나 한없이 가벼워져버림. 영화가 일말의 다크함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끝난다고도 할 수 있겠다. 

신파 코드 역시 없다곤 할 수 없지만 최루성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외로 담백한 느낌. 난 은근히 신파 그 자체에 대해선 불호가 없는 편이다. 억지 눈물 짜내는 최루성 신파가 싫었던 거지. 그래도 그런 요소는 없었기에 다행이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찾아온 오달수라는 배우를 제대로 보게끔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그는 단독 주연작으로 우뚝 선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명품 조연'이라는 타이틀로만 너무 오래 보아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내내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이 배우의 얼굴을 이토록 가까이서 이토록 오래 본 적이 있었나?' <이웃사촌>은 오달수의 앞얼굴과 옆얼굴. 끝내는 뒷모습까지도 조망하는 영화다. 오달수라는 배우의 인생에선 꽤 중요한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작품.

<타인의 삶> 같은 영화에 비하면 부족한 영화인 것이 맞다. 코미디로써 타율이 높지 않은 점 역시 충분히 마이너스 요소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감정의 드라마라는 생각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재조정한다면 충분히 볼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형편 없었던 <7번방의 선물>의 바로 다음 작품이 이 정도 수준이라니. 이환경 감독은 대체 칼을 얼마나 갈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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