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30 19:16

얼론 극장전 (신작)


<#살아있다>와 자매 관계에 놓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맷 네일러라는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각본가가 쓴 대본을 두 작품 모두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뭐, 중간에 각색과 윤색 과정은 따로 있었겠지만 하여튼 하나의 각본에서 탄생한 각기다른 국적의 두 영화. 나 <#살아있다>도 진짜 형편없는 영화라고 생각하면서 극장 문을 나섰었거든? 그러나 <기생충>의 박사장 집 마냥 바닥 밑엔 또다른 바닥이 있는 법. 씨팔, 내 살다살다 <#살아있다>가 더 좋은 영화라고 말할 만한 영화가 있었을 줄이야. 


#스포일러!


일단 <#살아있다>와의 이야기 구조적 차이점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아, 물론 제작 국가가 다르니 사소한 디테일들은 다르겠지. 엄청난 인터넷 속도를 바탕으로 게임 및 IT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영화답게, <#살아있다>는 주인공이 온라인 게임과 라이브 스트리밍 등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 인물을 소개 했었다. 반면 미국은 맥주와 원나잇의 나라잖아. <얼론>은 영화 초장부터 주인공이 웬 여자와 홀딱 벗고 누워있었던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외에 다른 점이라 한다면, <#살아있다>의 남녀 주인공은 그러지 않았으나 <얼론>의 남녀 주인공은 사랑 비슷한 감정으로 이어진다는 점. 하여튼 딱 이 정도를 제외하고 보면 나머지 내용들은 다 비슷비슷하다. 주인공이 가족들의 죽음을 음성 메시지로 알게 된다는 전개라든가, 또 그거에 빡친 주인공이 난데없이 현관문 밖으로 나선다든가 등. 하여튼 설정이나 내용이나 전개 면에서는 <#살아있다>와 <얼론> 둘 다 형편없음.

그럼에도 <#살아있다>엔 소위 시네마틱한 룩이라는 게 있었다. 알아, 안다고. 시네마틱한 룩만으로 좋은 영화가 될 수는 없는 거지. <#살아있다>는 여러모로 못난 영화가 맞지. 그래도! 그래도... 이야기와 주제가 다 거지 같았던 것은 맞으나 <#살아있다>는 최소한 영화적인 느낌이었잖아... 짧긴해도 많은 단역 배우들이 우르르 등장하는 이른바 그럴듯한 떼씬도 있었고, 좀비 분장도 꽤 훌륭했으며, 괜찮은 카메라 & 렌즈 때깔과 유명 배우들의 얼굴도 있었잖아. <#살아있다>를 옹호하는 게 아니다. 진짜 별로인 영화지만, 그래도 돈 많이 들인 티는 나는 영화 아니었냐는 거다.

<얼론>은 바로 그 점에서 <#살아있다>에 압도적으로 밀린다. 어차피 내용이나 주제는 다 똑같다. 심지어 캐릭터도 비슷하지 않은가. 그럼 어차피 <#살아있다>의 단점은 곧 <얼론>의 단점이기도 하단 소리다. 다만, 여기에 <얼론>은 <#살아있다>가 가지고 있던 그나마의 장점들마저 없는 작품이라는 것. 우선 영화의 룩이 산통을 깬다. 촬영과 조명은 장르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해내지 못한채 이상한 겉멋만 든 느낌이다. 특히 촬영. 집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동선을 카메라가 좌우로 패닝해가며 따라가는 장면이 있는데, 카메라 때문에 그나마 있던 몰입 다 깨지더라.

여기에 좀비 분장은 딱 B급 영화의 그것이고, 좀비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들의 몸짓이나 설정도 다 어이없을 뿐이며, 그나마 있는 액션들도 죄다 어색해서 웃기기만 하다. 그리고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주연배우가 연기를 더럽게 못함. 내가 진짜 웬만해서는 배우 연기에 대해서 이 정도로 지랄 안 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타일러 포시라는 배우는 그 전통을 깨게 만든다. 그리고 감독아... 배우가 연기를 못하면 클로즈업을 줄이라고... 풀샷에서도 연기 못하는데 클로즈업 쇼트에선 그야말로 다 벗겨놓는 거지, 그게.

그래도 영화의 후반부에 도널드 서덜랜드가 등장한다. 이건 좀 의외였다. 나오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물론 그는 연기 잘 하지. 근데 그 장면이 또 더럽게 재미가 없어요. <#살아있다>에서 전배수 배우가 연기했던 그 역할이 바로 이 영화에서의 도널드 서덜랜드 역할이다. <#살아있다>의 그 장면도 어이가 털리는 것으로는 손에 꼽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일말의 긴장감이 그 장면엔 있었잖아... 아니, 그 장면이 훌륭했다는 게 아니야... 그냥 나는 <얼론>이 그것조차도 못해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 뿐... <#살아있다>는 그래도 그 장면을 나름 장르적으로 연출해냈었다. 좀비와 그  좀비 보다 더 독한 인간에게서 오는 공포감과 긴장감. 그런 게 진짜 0.1g 정도는 있었다고. 그러나 <얼론>은 그걸 그냥 대화로 풀고만 앉았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빡치네.

결말도 충공깽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살아있다>의 결말이 거지같은 주제의식과 맞물려 덩달아 거지된 것에 비해, <얼론>은 그냥 이야기를 하다가 만다. '이렇게 끝난다고?' 싶을 때 끝난다. 내 살다살다 <#살아있다> 편을 들게 만드는 영화를 볼 줄이야...

이쯤되면 맷 네일러라는 양반에게 문제가 있다. 물론 <#살아있다>의 감독이나 <얼론>의 감독이나 둘 다 연출을 못한 것은 맞지. 근데 영화의 기본은 무조건 시나리오잖나. 이따위 각본을 써놓고 미국과 한국 양국에서 투자를 다 받은 거면 대체 맷 네일러 이 양반은 어떤 커넥션을 가지고 있던 것일까.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태평양 건너의 아름다운 나라에서조차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인맥은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그딴 것 1도 없고 그냥 말빨로만 조져서 투자받은 건가? 그 정도라면 맷 네일러 이 양반 대통령 하셔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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