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5 23:08

로그 극장전 (신작)


누가 그랬던가. 액션 영화에서 헬리콥터가 하는 일의 99%는 폭발이라고. <로그> 역시 마찬가지다. 저토록 많은 헬리콥터들이 포스터를 수놓고 있건만, 정작 영화 내에 등장하는 헬리콥터는 단 한 대 뿐이고 그마저도 나오자마자 RPG 맞고 폭발하기에 이른다. 그러다보니 저 한국판 공식 포스터에 하나둘씩 의심이 미친다. 지상 최대의 작전이 시작된다고? 보통 이런 문구는 싸구려 B급 영화 포스터에나 써붙이는 멘트인데? 그 아래 쓰여진 '서바이벌 액션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또 뭘까? 그냥 액션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서바이벌 액션 블록버스터라고? 난데없이 서바이벌은 왜 갖다 붙인 거지? 


열려라, 스포 천국!


영화를 보고나니 깨닫게 된다. '서바이벌'이란 표현을 쓴 것은 영화가 의외로 크리쳐 장르 영화의 톤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다,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같은 장르 말이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를 괴생명체에 의해 하나둘씩 죽어나가는 주인공 무리들. 다만 여기서 등장하는 괴생명체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자, 그것도 암사자임. 밀렵꾼들에 의해 상처를 입고 새끼들까지 빼앗겨 분노한 암사자의 발톱에 서바이벌 게임의 한 가운데로 떨어진 주인공과 그 파티원들. 이래서 제목이 '로그'구나. 로그에는 '도적' 또는 '범죄자' 등의 여러가지 뜻이 있지만, 그 중엔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홀로 활동하는'이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제목이 수식하는 것은 결국 그 암사자였던 것이다.

여기서 영화가 흥미로워진다. 그냥 용병 집단을 주인공으로 삼고 아프리카를 배경으로해 대충 뚝딱 만든 액션 영화일 줄 알았는데, 크리쳐 장르의 요소를 요로코롬 가져왔으니 나름 머리 쓴 거라면 머리 쓴 거지. 게다가 나는 또 크리쳐 장르를 좋아한다. 신선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크리쳐 디자인을 기대할 순 없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악어나 상어 등 실존하는 동물들을 데리고 크리쳐 장르로 풀어냈던 영화들이 많았으니 사자여도 기대할래야 기대할 수 밖에 없었다는 거지.

그러나 딱 거기까지. 사자를 활용한 크리쳐 장르 영화라 하기엔 그 아이디어나 설정들이 너무나도 빈약하다. 어딘가 나사 빠진 것 것만 같은 사자 CG의 퀄리티는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러나 거대 괴수 영화나 크리쳐 장르 영화들이 항상 그랬지 않았나. 제작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적절한 연출로 거대 괴수와 크리쳐의 디자인을 감질나게 숨김으로써 특유의 그 맛을 만들어낸 게 이쪽 장르의 매력 아니었나. 그러나 <로그>는 그냥 세부적인 아이디어가 없다. 액션 영화의 태에 암사자로 크리쳐 장르 요소 넣은 아이디어 자체는 좋지. 근데 그럼 뭐하냐고, 그 뒤가 없는데. 별다른 아이디어 없이 사자는 그냥 여기저기서 갑툭튀해 주인공 파티원들을 하나 하나씩 죽여댄다. 색다른 긴장감이나 연출이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할 정도.

그렇다고 액션 영화로써 쾌감이 큰 것 역시 아니다. 규모는 작고, 산발적이다. 여기에 그나마 있던 몰입까지 와장창 깨버리는 징징이들의 대향연. 진짜... 여기 나오는 애새끼들은 그 면상을 한 대씩 다 골고루 갈겨주고 싶더라. 기껏 구해줬더니 힘들다고 징징대, 목숨바쳐 호위하고 있는데 과거사 갖고 갑자기 화내, 지들끼리 합심해 싸운다고 하긴 하는데 별다른 도움도 안 되고 진짜 씨팔... 그나마 초반에 징징대던 새끼는 야생 악어한테 참교육 당해서 그나마 사이다였음. 진짜 이런 답답 고구마 캐릭터들 싫어하는데 여기엔 셋이나 나와서 죽는 줄 알았음.

결국엔 별 거 없었던 영화다. 액션 장르와 크리쳐 장르를 접붙인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고. 근데 전형적으로 두 마리 토끼 다 놓친 결과의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이럴 거면 그냥 액션 하나로만 밀고 나가든가.

뱀발 - 메간 폭스에게 악감정은 없는 편이다. 그냥저냥 무난하게 연기해내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근데 액션 연기는 왜 이렇게 못하지? 그걸 제일 잘하게 생겨놓고는 제일 못한다는 게... 키아누 리브스는 <존 윅> 찍을 때 총기 훈련 빡세게 받았던 걸로 유명한데 이 영화의 메간 폭스는 정작 한 용병 집단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 총기 다루는 게 제일 어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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