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07 14:29

모술 극장전 (신작)


이라크의 모술이라는 도시에서 펼쳐지는 ISIS와 엘리트 스왓팀 사이의 혈투.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도 포인트지만, 어쨌거나 <익스트랙션>과 마찬가지로 루소 형제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부분에서 기대치가 컸던 작품이기도 하다. 


열려라, 스포 천국!


직접 감독한 작품이 아니라해도, 루소 형제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데에서 우리가 갖는 기대감의 포인트는 다름 아닌 액션일 것이다. 루소 형제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서부터 실전 무술의 감각을 베이스로한 다찌마리와 밀리터리 액션 영화로써의 화기류 묘사에 엄청나게 공을 들였던 감독들이다. <익스트랙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영화도 이야기 자체는 밋밋했지만, 액션 묘사 하나만큼은 괜찮은 영화였거든. 하여튼 그 때문에 기대하게 된 영화인데, 첫 오프닝 시퀀스부터 아예 총격전의 한복판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더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루소 형제가 참여한 액션 영화인데, 시작부터 얄짤없이 총격전 한복판에서 카메라가 켜지다니. 이건 아예 대놓고 액션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라고 외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영화 속 액션의 물리적인 비중은 얼마 되지 않는다.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나마 있는 액션 묘사들도 멋지거나 흥분되는 느낌이 덜하다. 그러니까 노골적으로 말한다면, <모술>은 평범한 액션 영화로써도 한참을 못 미치는 것처럼 보인다. 넷플릭스에서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클릭했다면 십중팔구는 실망할 거라는 말. 다만 그런 의문은 들었다. 영화가 왜 멋지지 않을까? 아무리 직접 연출한 작품이 아니라고는 해도, 루소 형제의 이름은 항상 멋진 액션을 담보하는 브랜드였다. <익스트랙션>도 그랬잖아. 근데 왜 이 영화의 액션은 멋지지 않은가.

주인공들의 죽음을 마냥 영웅적으로만 그리지도 않는다. 어떤 부대원은 동료 부대원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겨 팀킬에 일조한다. 괄목할 만한 리더십으로 모두를 아울러도 모자랄 판에 스왓팀의 리더 '자셈'은 부하에게 결정에 대한 바통을 넘기고, 심지어 액션 영화에서 참으로 흔하게도 쓰이는 그 놈의 RPG 바주카포조차 멋지게 명중하지 못한다. 적들과 맞서려면 이 정도 무기는 있어야지-하며 챙긴 것치고는 정작 쏘고나서 불발탄 신세가 되니까. 

바로 그 부분들에서, 이 영화가 액션 영화로써의 흥분과 쾌감을 철저히 배제 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런 묘사 자체가 리얼리티 그 자체를 담보하는 연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현재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화를 베이스로 한 영화이니 만큼, 오히려 더더욱 과장된 묘사를 하지 않으려 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엔딩 크레딧에서도 가장 먼저 뜨는 것이 실제 스왓팀의 전사자들 명부잖나. 그들에 대한 헌사와 예우의 표시로써 이런 연출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자셈의 행동이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멀쩡한 길가에 유리창 하나를 깨뜨려놓고 방치하면, 그 지역이 순식간에 슬럼화 된다는 이론. 이미 깨진 유리창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 죄책감없이 주변을 더 어질러놓게 된다는 것. 실존하는 남의 나라에 이런 표현을 써서 좀 미안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 이라크라는 나라와 중동이라는 지역은 대개 그런 이미지 아닌가. 건물은 반쯤 무너져있고, 거리 이곳저곳에서 쓰레기가 불타며, 황량한 모래 먼지만이 가득 남아 저런 곳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느낌을 주는 그런 황폐화된 이미지. 수많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이 중동을 이런 식으로 담음으로써, 우리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중동이라는 지역에 대해 그런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무너진 도시고, 길거리에 쓰레기나 시체들이 즐비한 곳이니 이것저것 다 어질러져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아마 내가 그 곳에 갔어도, 쓰레기 아무데나 그냥 버렸을 걸. 내가 쓰레기 버리나 마나 이미 그 곳의 도로는 더러울 테니까. 그런데 바로 그 점에서 자셈의 행동이 인상적이다. 극중 인물들 모두 주변 미화에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나처럼. 허나 자셈만은 예외다. 그는 부대원들이 쉬고 있을 때에도 이미 어질러질대로 어질러진 방 안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담는다. 그건 다른 부대의 전초기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자기 부대가 아님에도 그는 남의 부대를 정리한다. 심지어 그의 최후는 어떠한가. 그는 적진 한 가운데에서 누리는 90초의 휴식 시간조차도 환경 미화에 투자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쓸데없어 보이는 정리를 하다가 허무한 최후를 맞이한다.

여기에 영화의 메시지가 있었다고 난 생각한다. 이라크는 자셈의 모국이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서방 세계와, 중동과는 이역만리 동떨어져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던 동아시아의 우리들조차 이라크는 우범지대고 돌이킬 수 없는 세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모국인 자셈만은 이라크를 포기하지 않는다. 모두가 외면하고, 모두가 포기하고, 모두가 방관할 때조차 그는 모국에 헌신한다. 이미 어질러져 있어 그 누구도 정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도 그는 조금씩 조금씩 그 공간을 치워나간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때 조차도 외로운 싸움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것. 그게 진짜 애국심이고 진짜 신념이다. 나는 자셈을 그렇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의 허무한 죽음이, 마냥 허무하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하여튼 이렇게 장점들도 있는 영화지만, 다시 한 번 말하건대 액션 영화적 쾌감을 쫓는 넷플릭스 유저들이라면 실망할 게 뻔한 작품이다. ISIS라는 때려죽여도 모자랄 악당들을 설정해놓곤 이렇게 박력없고 쾌감없이 연출해놓다니. 괜찮으면서도 별로고, 별로면서도 괜찮은 영화. 다만 역시나 다른 누군가에겐 추천하기 망설여지는 영화. <모술>이 딱 그 정도의 영화다. 솔직히 나라도 다시 볼 의향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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