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2 14:12

더 저지, 2014 대여점 (구작)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된 판사이자 아버지를 변호하기 위해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던 고향 깡촌 마을로 돌아가는 속물 변호사. 근데 사실 살인 사건은 그저 허울이었을 뿐, 영화가 결국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서로 의절한 부자 관계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일이다. 그러니까 법정 드라마보다 가족 드라마에 더 가까운 영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그래서 말해보자면. 법정 드라마로써의 효용은 좀 떨어지는 영화다. 설정은 정말로 좋지 않은가. 아들이 아버지를 변호해야한다는상황도 물론이고, 그 아들이 속물 변호사에 그 애비는 현역 판사라는 점 역시 꽃을 피운다. 가족 관계와 가치관에 있어서 완전히 대척되는 지점에 놓인 두 인물이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이 모든 것들을 뚫고 가야만 하는 상황. 설정은 참 괜찮은 영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영화는 법정 드라마보다 가족 드라마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정 장면에서의 말빨 혈투 같은 것들이 잘 드러나질 않는다. 원래 법정 드라마 또는 법정 스릴러들은 다 그런 재미에 보는 것 아닌가. 칼없이 혀와 쇼맨십만으로만 진행되는 고수들의 싸움. 그런 것이 필요했을 텐데, 영화는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주지 못한다. 

철저한 논리와 명백한 증거를 통해 이뤄져야만 하는 법리 다툼 & 법정 공방은 난데 없는 가족 신파에 무너져내린다. 물론 신파라고 표현했다 해서 그게 최루성이었다는 건 아니다. 한국에서 흔히 만들어지는 최루성 신파 영화들에 비하면 이 영화가 선사하는 눈물의 무게는 꽤 가볍고 또 담백한 편이다.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없다는 말. 그러나 그 위치가 너무 이상하다. 꼭 법정에서 난데없이 그랬어야만 했나. 다른 장면은 그렇다치더라도 결말부 최후의 진술 장면 속 가족 드라마는 좀 더 담백하게 갔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여튼 이런 식이다보니 상대편 검사인 빌리 밥 손튼의 캐릭터도 확 죽어버림. 심지어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 역시도 대강 훑고 지나간다는 것 자체가 좀 넌센스이기도 하네.

그러나 재미있게도, 법정 드라마를 포기하고 얻어낸 가족 드라마가 꽤 진득하다. 철부지 아들로서 막가파 꼰대 아버지와 벌이는 갈등과 그 봉합 등이 꽤 적절하게, 공감 가능할 정도로 묘사된다. 특히 한없이 굳세기만 했던 아버지가 아들의 딸, 그러니까 자신의 손녀를 처음 안아보는 장면에서의 임팩트가 상당하다. 여기에 아버지와의 관계 뿐만 아니라 형제들과의 관계 역시 회복하기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꽤 디테일하게 그려져서 더 좋다. 아버지와의 관계로만 천착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 가치있다.

다만 베라 파미가가 연기한 '사만다'와의 관계 회복은 뜬금없는데다 종종 몰입을 깬다. 자신의 딸일지도 모르는 아가씨와 키스하게된 주인공. 이런 설정이 애시당초 대체 왜 필요하단 말인가. 그 자체로 어떤 의미나, 새로운 이야기 전개로 나아가는데에 추진력으로써 필요한 부분이었다면 이해했겠지만 현재 버전에서는 그저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 하나 정도로 표현된다. 그 딸을 떠나서 그냥 사만다와의 관계 전체가 그렇지만.

'토니 스타크' 생각이 나면서도 안 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가 좋고, 옆에서 묵직하게 인파이터 복서로서 군림하는 로버트 듀발의 호연도 좋다. 여기에 나오는지도 몰랐던 빌리 밥 손튼과 빈센트 도노프리오, 베라 파미가 등도 인상적이다. 배우 보는 맛으로 더 재밌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덧글

  • SAGA 2020/12/12 23:35 # 답글

    토니 스타크가 아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보고 싶어서 찾아본 작품이었죠. 법정 드라마의 탈을 쓴 가족 드라마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변호사나 판사 같은 소재는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위한 장치였다는 느낌이랄까요?
  • CINEKOON 2020/12/23 15:12 #

    맞습니다, 법정 드라마보다는 가족 드라마 맞고요. 그나저나 이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어떻게 봐도 토니 스타크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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