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봤을 때의 기억으로는 '톰 크루즈의 그저 그런 일뽕 영화'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다시 보니 과거 사무라이 영화의 테를 두른 수정주의 서부극이더라고. 물론 지극히 서양인 관점의 오리엔탈리즘 영화라는 단점도 있지만, 어쨌거나 처음 봤을 때보다는 재밌게 봤다.
라스트 스포일러!
배경이 일본일 뿐, 미국의 반성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영화다. 개척이라는 핑계로 인디언들을 몰아낸 개국의 역사에 대해서도 코멘트 하고 있고, 후반부 일본인 vs 일본인의 구도는 미국 남북 전쟁을 떠올리게도 만드니까. 일단 주인공인 '네이든'부터가 인디언들과의 전투로 인해 PTSD를 앓고 있는 전직 군인으로써 묘사된다. 명령과 복종이라는 굴레 때문에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심지어는 같은 동료와 부하들까지 모두 잃었던 남자. 술에 절은채 총을 난사하는 첫 등장에서 영화가 그걸 썩 잘 보여주고 있다.
실제 역사와는 별개로, 어쨌거나 영화 속 일본은 서구 열강들의 간섭과 썩을대로 썩은 고위 관리들에 의해 발전과 분열을 함께 겪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생소한 이역만리 타국 땅으로 전근 오게된 우리의 네이든. 근데 여기 반군들은 소총과 기관총까지 발명된 시대에 칼 하나만 믿고 돌격 전술을 쓴다지? 그것도 갑옷 하나 덜렁 믿고? 이런 미개한 족속들을 보았나. 그러나 이렇게 미개 하다고 생각했던 족속들에게 끌려가 오히려 문화적 +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주인공. 이건 <늑대와 함께 춤을>과 <아바타> 속 딱 그것 아닌가. 배경을 일본으로 옮겼을 뿐, 영화는 여전히 수정주의 서부극으로써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일뽕이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솔직히 사무라이 반군들의 첫등장 장면은 말그대로 개쩐다. 총을 든 신식 군대에 맞서 자욱한 연기를 해치고 등장한 사무라이 기마부대. 이 장면에 에드워드 즈윅과 촬영감독이 본인의 연출력을 그냥 싹 다 갈아넣은 것 같다. 이 이미지 최근에 게임 <고스트 오브 쓰시마> 트레일러에서도 봤던 것 같은데, 원조로 따지면 이쪽이 먼저구나. 그 첫등장 장면을 워낙 개쩔게 만들어놔서 오리엔탈리즘이고 뭐고 그냥 입만 벌린채로 봤다.
이후 가치관과 문화가 다른 주인공이 사무라이 집단에게 편입되며 천천히 동화되어가는 과정은 좀 거칠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편집은 안정적이고, 주인공 입장에서 사무라이 커뮤니티에 친밀감을 느껴가는 요소들 모두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 자체로 너무 뻔한 느낌이랄까? 네이든의 심리 묘사도 다 뭔지 알겠고 주위 사람들과 새로 맺게 되는 관계들 역시 다 뭔진 알겠는데, 어쨌거나 신선한 맛은 없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사실 이 시퀀스는 그냥 네이든 알그렌의 일본 농촌 브이로그 같기도 함.
액션 대작으로써의 도리도 어느정도는 다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사무라이 영화들처럼 정적인 동시에 시적인 느낌이 드는 감각적 액션은 아니지만, 큰 스케일은 큰 스케일대로 잘 표현해내고 작은 규모의 다찌마리는 또 그것대로 잘 정돈해놨다. 일단 당시 일본의 사회 모습을 묘사한 프로덕션 디자인 자체가 워낙 대단해서 눈에 확 들어오기도 하고. 특히 초반부 미국에서 일본으로 도착한 네이든의 눈에 비친 항구 모습이 진짜 대단하다니까. 이 정도 규모를 재현해내는데 대체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른쪽'은 '옳은 쪽'이다. 그래서 영단어로도 'Right'라고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시간의 순행을 표현할 때 역시 타임라인을 오른쪽에서부터 왼쪽 방향으로 읊는다. 이와 관련해, 대부분의 액션 영화들 속 주인공의 진격 방향은 모두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이다. <반지의 제왕> 속 모든 전투들이 다 그랬다. 헬름 협곡에서 '간달프'와 로한의 기마부대가 딱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미나스티리스 전투에서 로한의 군사들 역시 그랬지. <어벤져스 - 엔드 게임>에서 역시, '타노스'에 대항해 수퍼히어로들이 향한 방향은 오른쪽에서 왼쪽이었다.
그러나 <라스트 사무라이>의 사무라이들은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진군한다. 주인공 진영이고, 나름 선하게 묘사되는 데도 왜 그런 것일까. 그건 그들이 시대를 역행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총과 돈이 곧 권력으로 작용하는 시대에 맞서, 오직 칼과 충성만을 고집하는 존재들. 그러나 시대적 순리로 보면, 당연히 사그라들 수 밖에 없는 존재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들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그게 바로 이 영화만의 시대를 역행하는 이미지 라인인 것이다.
누군가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 묻자, 대신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하겠다고 하는 네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죽음의 까닭이 아닌 삶의 이유고 목적이다. 갈수록 물질화 되고 결과만이 중요한 이 세상에서, 시대를 역행하며 목적과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려드는 인물의 입에서 나오기에 꽤 적절한 대답이란 생각이 들었다.
뱀발 - 일본어에 대해선 문외한이긴 한데, 그래도 티모시 스폴의 일본어 연기가 꽤 괜찮은 수준인 것처럼 느껴진다. 역시 외국어 공부는 생존이 달려야한다.
덧글
rumic71 2020/12/19 18:13 # 답글
CINEKOON 2020/12/23 15:14 #
포스21 2020/12/19 18:50 # 답글
CINEKOON 2020/12/23 15:14 #
SAGA 2020/12/20 08:05 # 답글
CINEKOON 2020/12/23 1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