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2 13:35

월레스와 그로밋 - 거대 토끼의 저주, 2005 대여점 (구작)


눈치 드릅게 없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그런 그를 보좌하는 충실한 견공 콤비의 귀환. 보다보면 누가 견공이고 누가 견주인지 헷갈리는 영화다.

기존 단편선의 호흡이나 리듬을 고려해 비교하면 확실히 좀 길게 느껴진다. 근데 또 워낙 재미있게 잘 만들어놓은 데다가, <킹콩>과 <늑대인간>이라는 썩 대중적 소재들을 어레인지 했기 때문에 한 편으로는 좀 뻔하더라도 감상하고 소화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음. 아니, 단편들과 비교해서 호흡이 길다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적절한 페이스를 갖추고 있는 영화인 거 맞다.

이 시리즈 속 '월레스'와 '그로밋'은 언제나 평행 세계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해왔다. 물론 발명가라는 컨셉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구체적인 직업들이 그동안 많이 바뀌어왔잖아. 이번 극장판에선 채소 몸집 불리기에 단체로 미쳐있는 작은 마을의 수호자, 해충 박멸단이다. 그 컨셉으로 재창조된 둘의 집과 자동차 디자인 등이 확실히 볼만하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화려하지 않으면서 화려한, 높진 않되 깊은 그런 기술력과 장인 정신이 여기에서 빛난다. 막상 준다 해도 딱히 쓸데는 없을 것 같지만, 실제 촬영에 썼던 클레이 소품들 괜히 갖고 싶어질 정도임.

은근히 호러와 궁합이 잘 맞는 콤비이기도 하다. 원래 단편들 속에서도 'T-1000' 뺨치는 체력과 집착으로 공포를 줬던 달나라 자판기 & 양치기 개,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을 어둡게 지배했던 고무장갑 펭귄 등이 워낙 호러블하게 잘 묘사되어 있었잖아. 이번 극장판은 그걸 고딕 괴물 장르와 합친다. 근데 그게 진짜 늑대도 아니고 토끼라는 점에서 존나 은근히 웃겼음. 하여튼 프레임 귀퉁이나 자욱한 안개 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괴물의 이미지를 통해 호러 연출이 가볍게 잘 되어 있는 편.

근데 나 이거 극장에서 개봉 했을 때 보고 진짜 오랜만에 다시 본 거였는데, 아드만의 장인 정신이 비단 클레이 애니메이션 기술에만 녹아있는 게 아니더라고. 성인이 되고 봐서도 진짜 미친 것 같은 유머 센스들이 그득했다. 오히려 그런 부분들에서 더 장인 정신이 빛났던 것 같음. 분위기 존나 잡는 신부 캐릭터부터, 논 디제시스 사운드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디제시스 사운드였던 걸로 개그 치는 부분들도 다 먹힘. 눈치없는 오르간 연주자 개웃기고, 신부랑 대화하던 '빅터'가 천둥소리에 빡쳐서 창문 닫는 것도 존나 웃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벌써 2005년 영화던데 왜 후속 극장판이 또 안 나오고 있는 걸까. 그 사이 단편도 하나 나왔고, 물론 아드만 스튜디오 입장에서야 <치킨 런> 속편 등 다른 프로젝트들로 바쁘겠지. 그래도 회사를 지금까지 먹여살린 간판인데 지금쯤이면 <월레스와 그로밋> 하나 더 만들어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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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스카라드 2021/01/03 11:35 # 답글

    월레스와그리밋이 단편 시리즈 말고도 15~16년전에 극장판이 상영되었다니. 전혀 몰랐어요. 어느새 잊혀졌는데 지속적으로 장편화 상품으로 밀어붙였으면 나름대로 성공하지 않았나 싶어요.
  • CINEKOON 2021/01/08 10:58 #

    단편만 보셨다면 극장판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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