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때문에 개봉일을 미루고 또 미뤄왔던 영화. 그래놓고 이제서야 개봉하길래 묵혀두면 묵혀둘수록 금전적인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닌가 보다- 했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전혀 다른 의미로 개봉을 서두를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영화 속 메시지의 주 타게팅 대상이 트럼프인데, 곧 있으면 그 인간 임기 끝나잖아.
스포일러 1984!
이미 여러번 말해왔듯, 마블은 현대화에 힘쓰고 DC는 신화화에 주력한다. 어린 '다이애나'로 시작되는 오프닝 씬부터 복고적인 감각이 가득하고, 그외 여러 액션이나 CG 디자인 등 역시 그러하다. 여기에 자신의 근본이 만화책이라는 것을 잊지 않은 듯, 이야기는 물론 이미지들 역시 다분히 키치하다. 근데 이게 또 나쁘게 말하면 결국 촌스럽다는 말도 되는 거거든. 실제로 다이애나가 홀로 빠르게 뛰는 모습이나 날아다니는 묘사 등은 CG 티도 좀 많이 나고 그 포즈나 행동 자체 역시 유치하게 느껴진다.
다만 <원더우먼 1984>의 강점은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데에 있다. 물론 이것에도 장단점이 존재한다. 때때로 너무 과하고 노골적인데, 주요 갈등을 매듭 짓는 방식도 너무 나이브하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비현실감. 애초 수퍼히어로 장르에서 현실감을 기대하는 게 헛된 일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을 날아다니고 태산을 옮기는 그들의 능력 자체는 비현실적일지 모르나, 그들을 이야기에 담는 방식이나 전개 자체에는 현실감이 담보되어 있어야지 않나. 그 점에서 <원더우먼 1984>는 큰 약점을 가진다.
그래서, 그런 단점들을 감내하면서 까지 결국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뭔데? 영화는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거의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친채 고하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풀어낸다. 영화의 주요 악당인 '맥스웰 로드'는 금발의 백인 남성에 쫙 빼 입은 정장으로 비즈니스 맨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표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고, '다들 모든 걸 더 원하죠?'라는 캐치프라이즈를 필두삼아 모든 이들의 소원을 들어준다 말하며 헛된 약속을 하는 인물이다. 다른 이들의 소원이긴 했지만 어쨌거나 맥스웰 로드는 본인의 능력을 통해 종교적, 인종적, 국가적 갈등을 꾀하고 심지어는 장벽도 세운다. 당시 소련이었던 러시아와의 갈등을 재점화 시키고 대통령 코스프레를 하며 TV를 비롯한 매스 미디어 앞에서 쇼맨십을 펼치는 악당. 이건 누가 봐도 트럼프 아닌가?
여기에 원작에서 '치타'로 알려진 '바바라'가 양념처럼 끼어든다. 맥스웰 로드가 원더우먼과 사상적으로 대립하는 악당이라면, 치타는 좀 더 물리적인 상해를 가하는 악당이다. 자기 비하와 낮은 자존감으로 무장해있던 그녀 역시 트럼프의 지지자들로서 표현된다. 그녀는 여성이긴 하지만 역시 금발의 백인이고, 자신이 메인 스트림으로부터 줄곧 무시받고 있단 착각으로 한 단계 더 높은 삶을 꿈꾼다. 그리고 그런 꿈을 이뤄준 맥스웰 로드를 왕처럼 지키며 "내가 얻어낸 걸 빼앗기기 싫어"라는 말로 원더우먼과 대립각을 세운다. 크리스틴 위그가 나름 도시 여성으로서 연기 해내고 있지만, 이건 어쨌거나 전형적인 레드넥들의 정치적 이미지잖아.
이처럼 장르 영화로써 현실 정치의 맥락을 불러들여 메시지화 해냈다는 점은 높이 산다. 결말부 이 모든 갈등들이 지나친 순수함으로 봉합되는 것 역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괜찮다. 다만 장르 영화로써 먼저 해냈어야 한 부분에서 실패한 것은 확실하다. <원더우먼 1984>는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로써 액션이 형편없다. 채찍이라는 특별한 무기로 멋진 액션들을 보여주었던 전작의 그것과 달리, 이번 속편의 액션들은 여러모로 아쉽기만 하다. 일단 그 물리적 분량이 많지 않을 뿐더러, '힘과 능력을 잃어가는 원더우먼'이라는 이야기 컨셉 때문에 전작 만큼 파괴력이 강하지도 않다. 여기에 가장 큰 실책은, 클라이막스를 말아먹었다는 것이겠지. '타잔'의 덩굴 타기를 연상케하는 원더우먼 vs 치타의 지리멸렬한 싸움이 끝나면, 결국 남는 것은 맥스웰 로드와의 협상 아닌 협상이다. 원더우먼의 주 무기는 '사랑'이라는 걸 물론 안다. 그러니까 맥스웰 로드를 결국 대화를 통한 사랑의 힘으로 끝내 굴복시키는 것 역시 괜찮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데에 액션이 이렇게 부족하면 어떡하냐. 치타와의 싸움도 그저 그런데 맥스웰 로드랑은 말로만 다투고 끝이니, 수퍼히어로 장르 영화를 보러 온 관객으로써는 당황할 수 밖에.
이야기 역시 미국과 이집트,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며 호흡이 널뛰기를 한다. 제아무리 원더우먼이라 해도 이집트 갈 전투기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드림스톤'의 정확한 작동 방식은 무엇인지 등 그냥 퉁 치고 넘어가는 디테일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는 것은, 결국 다이애나와 '트레버'의 관계 때문이다. '옳은 일'을 위해 '사랑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는 딜레마도 뻔하지만 그만큼 강력하고, 무엇보다 갤 가돗 & 크리스 파인의 상성이 무척이나 좋다. 특히 크리스 파인. 후반부, 결국 둘이 헤어지는 장면이 있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사랑하는 남자를 포기하는 다이애나의 모습. 일반적인 연출이었다면 감정 가득한 둘의 클로즈업으로 진행되었을 텐데, 이 영화는 프레임 귀퉁이에 트레버를 남기고 돌아서서 달려나가는 다이애나의 모습을 한 쇼트로 멋지게 표현해냈다. 다른 액션 장면 등에서는 패티 젠킨스의 연출력이 그냥 평범하게 느껴졌었는데, 유독 이 장면에서 만큼은 연출을 잘 했더라고. 담백하고 플랫해서 더 감정이 아련하게 다가오는 그런 쇼트였다.
마냥 좋은 영화라고 할 수만도 없고, 또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영화도 아니다. 양날의 검으로써 메시지를 갖고 있는 영화. 그럼에도 크리스 파인의 트레버를 한 번 더 볼 수 있어 좋았다. 1편에서 죽인 트레버를 굳이 데려올 필요가 있었을까- 하며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막상 또 다시 보니 좋더라고. 물론 이래놓고 다음 3편에도 나오면 그건 진짜 문제겠지만.
덧글
포스21 2020/12/23 19:14 # 답글
전 80년대 분위기의 쇼핑몰이나 브라운관 스타일의 모니터 , tv , 비보이 ... 오락실 등
자잘한게 끌리던데요. ^^ 생각보다 80년대 미국은 미래적인 분위기의 세상이었더군요.
그리고 액션씬은... 트레버와의 버디 무비식 싸움장면이 재밌었습니다. 중동쪽에서의 자동차 질주 라던지
백악관에서 2 대 2 싸움은 꽤 재밌었습니다. 덕분에 원더우먼 파워레벨은 마블의 블랙위도우 수준까지 내려갔지만... ^^
결판 내는 것도 , 맨오브 스틸에서의 수퍼맨이 조드장군을 처치한 것 처럼 원더우먼이 맥스웰로드의 목을 분질러서는 안되죠. ^^ 그직전의 치타와의 승부가 좀 기대이하라는게 아쉬웠지만요.
CINEKOON 2021/01/08 10:57 #
dj898 2020/12/24 07:15 # 답글
CINEKOON 2021/01/08 10: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