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 영화마다 인상적인 클로즈업 쇼트를 만들어내는 비올라 데이비스와 얼마 전 작고한 채드윅 보우즈만, 그리고 제작자로서 그들의 뒤를 든든히 봐주었을 덴젤 워싱턴의 신작. 다루고 있는 소재는 흑인 음악의 대명사 블루스. 그러니까 결국 이 영화는 흑인들이 만든, 흑인들을 위한, 흑인들에 의한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원작이 희곡이라고 들었다. 이번 리메이크 역시 그 원작을 그대로 발판삼아, 영화임에도 다분히 연극적인 느낌을 취한다. 연극처럼 최소한의 세트에서 많은 인물들이 서로 블로킹을 바꿔가며 뒤엉키고, 또 그들의 등퇴장도 명확한 편. 여기에 음악이라는 소재까지 끼어드니, 그야말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영화가 따로 없다.
제목만 보면 '마 레이니'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사실상 채드윅 보우즈만이 연기하는 '레비'와 거의 두 탑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마 레이니는 그동안의 과정을 통해 결국 대부분의 것을 얻어낸 이른바 기득권 아닌 기득권으로서 묘사되고, 레비는 이제 막 발돋움하려는 젊은 예술가로 표현된다. 그럼에도 둘은 결국 똑같은 공통점을 가진 인물들이다. 백인 위주의 사회와 문화계에서 엄청난 견제를 받고 있다는 게 바로 그것. 그러한 현 상황 속에서 결국 성공이라는 것을 이뤄낸 마 레이니는 오히려 그런 현실을 알고 있기에 더 강하게 군다. 레비 역시 불운한 과거사로 인해 백인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꿈 많은 젊은이로서 그 모든 걸 감내하는 동시에 심지어는 더 모른척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요소들 보다도 훌륭한 캐스트의 멋진 퍼포먼스를 보는 것이 가장 큰 재미로 다가오는 영화일 텐데, 이런 레비의 캐릭터성 때문에 채드윅 보우스만의 유작으로써 강력한 파워도 갖췄다. 그는 짧은 런닝타임 내내 삶의 약동을 간절하게 표현 해낸다. 꿈꾸던 음악을 해내고,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기쁨과 분노 등의 희로애락을 그대로 표출해내는. 여기에 그런 대사도 있지 않은가, 죽음에 비하면 삶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런 레비의 모습들에서 채드윅 보우스만의 죽음이 겹쳐져 괜시리 씁쓸해졌다. 그래서 여러모로, 한 배우의 유작으로는 꽤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편.
피아노를 치는 '톨레도'가 말했다. 흑인은 남은 찌꺼기 같은 존재들이라고. 백인 중심 사회에서 고된 필터링을 거쳐 결국 찌꺼기로 남은 흑인들. 결국 그들이 등을 보이고 찔러 죽이는 것은 같은 피부색의 같은 사람들이었다. 속에서 터져나오는 울화를 결국 다시 안으로 밖에 돌릴 수 없던 이들. 바로 그런 점들 때문에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는 음악 영화 보다 흑인 영화에 더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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