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28 12:58

오늘부터 히어로 극장전 (신작)


살다보면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예컨대 그런 거. 파라마운트는 왜 그토록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리부트 아닌 리부트에 집착하는 걸까? 라이언 존슨은 왜 하이퍼 스페이스 카미카제의 오류에 대해 미리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아비 아라드는 왜 그렇게 '베놈'에 미쳐있는 걸까? 등등.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미스테리가 바로 그거다. <엘 마리아치>나 <황혼에서 새벽까지>, <마셰티> 같은 유혈낭자 B급 영화를 주로 찍는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대체 왜 <스파이 키드> 같은 유치한 아동 영화를 못 놓아 계속 만드는 것일까. 그런 그야말로, 진정한 두 얼굴의 사나이 아닐까?


오늘부터 스포일러!


영화는 '어벤져스'나 '저스티스 리그' 같은 수퍼히어로 팀의 도열을 제시한다. 수퍼맨 포지션으로는 괴상한 번역 네이밍 센스를 가진 '기적의 사나이'가 존재하고, 최근 <원더우먼 1984>에서 '맥스웰 로드'를 연기하기도 했던 페드로 파스칼이 이들 모두를 이끄는 팀의 리더를 맡고 있기도 하다. 근데 막상 보면 대체 이 양반이 왜 리더인지, 정확히 이 양반의 능력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음. 그냥 데드풀 느낌의 아메리칸 닌자 같던데.

어쨌거나 갑작스런 외계인의 지구 침공으로 수퍼히어로들이 위기를 맞게 되고,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결국 그들의 어린 자녀들이 나서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다. 여기까지만 봐도 딱 알겠지만 결국 아동용 영화 맞다. 그러다보니 각본의 개연성도 겁나게 헐겁고, 묘사에 있어서 유치하고 또 허접한 부분도 무척이나 많다. 이야기의 전형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토록 많은 아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할 필요가 꼭 있었나 생각해보게 된다. 부여된 능력들은 대체로 다 신선한 느낌이지만, 딱 그 능력 하나만을 위해 너무 많은 주인공들을 설정해둔 게 좀 무리수 같다. 캐릭터로서 한 명 한 명이 오롯하게 빛날 수 있는 순간을 많이 안배하지 못 했거든. 물론 어린 아이들 입장에서야 어린 주인공들이 우르르 떼로 나와 활약 펼치는 걸 더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근데 씨팔, 아무리 애들 영화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결말 맥빠지게 하기 있기 없기? 결국 이 모든 게 훈련일 뿐이었다고? 그 훈련의 주체도 뭔 노량진 오징어 같이 생긴 외계인들이고? 참나 어이가 없어서. 이럴 거면 그 외계인 새끼들은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고 덤벼들었던 건데? 아, 그것마저도 그냥 다 연기였던 건가? 싸움은 존나 못하는데 연기는 존나 잘했던 것이었구만?

그나마 영화에 재미가 있다면, 그건 결국 성인 연기자들 보는 맛 뿐이다. 아까 말했던 페드로 파스칼의 힘 쫙 뺀듯한 설렁설렁 연기를 보는 맛이 은근히 좋고, 나오는지도 몰랐던 보이드 홀브룩과 성 강의 출연 역시 괴랄한 재미를 준다. 특히 성 강이 뭔가 안쓰러우면서도 재밌음. 왜 나왔나 싶기도 하면서 또 그런 모습이 좋은 이율배반적 재미...랄까...?

하여튼 어린 관객들 입장에서야 넋 놓고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난 다 커버린 성인 관객이었다는 거... 그래요.. 어쩌면 그저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고른 내 잘못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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