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31 15:38

힐빌리의 노래 극장전 (신작)


그럴 때가 있다. 질풍노도의 성장기를 거치는 동안, 부모나 형제 자매 등의 가족들에게서 혐오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는. 근데 몇 년이나 몇 십년이 지나, 그들에게서 느꼈던 똑같은 혐오감을 본인에게서도 느끼는 것. 그래서 정말이지 가족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이구나-라고 받아들이면서도, 또 달리 말하면 그런 부분들조차 지금까지의 나를 규정하는 일부로써 작용하지 않았을까-하고 인정하는 일.

<힐빌리의 노래>는 딱 그걸 보여준다. 'JD 밴스'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할머니 & 엄마와 겪었던 갖가지 일들을 영화는 전시한다. 그러니까 영화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거인 거지, 지지리 궁상 콩가루 집안이지만 결국 우린 어쩔 수 없는 한 가족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지.

근데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그 주제 자체가 아주 신선하고 새로운 것은 아니지않나. 게다가 이를 표현해내는 방식과 그 에피소드들도 모두 다 어디서 볼대로 본 거다.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탈선하는 주인공의 모습? 있지. 마약 중독에 빠져서 자식들 내팽개치고 싸돌아다니는 엄마의 모습? 이것도 이미 본 적 있고 말고. 그러니까 신선한 영화는 아니라는 말.

전형성보다 더 큰 문제는, 결코 영화 속 인물들에게 호감이 가질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에이미 아담스가 연기하는 주인공의 엄마는 거의 그 분야에서 탑을 달리는데, 담당 배우의 호연은 차지하고서라도 일단 캐릭터에게 정이 안 간다. 아, 물론 관객으로서 우리가 이 캐릭터에게 무조건적인 정을 꼭 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그녀가 영화의 타이틀 롤로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관객인 우린 그런 그녀를 계속 지켜봐야 하잖나. 이 답답하고 이기적이고 무능력하고 고쳐지지 않는 인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보고만 있어야 하지 않나. 그 부분에서 영화가 너무 괴로웠다.

딱히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인물들의 성질머리에만 몰두하고 있는 듯한 영화. 에이미 아담스나 글렌 글로즈의 연기가 대단하고 헤일리 베넷이 든든하며 오랜만에 찾아온 프리다 핀토가 반가웠지만 딱 그 뿐. 보는내내 힘들어서 그만 보고 싶더라. 그래도 끝까지 보기는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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